양 같은 염소나 염소 같은 양이냐
강윤구 목사
을미년 양의 해를 맞이하면서 사람들은 청양이 어떻고 양의 성품이 어떻고 하는 말들을 많이 한다. 성경에도 온통 양에 관한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그 중에서도 요한복음에 나오는 목자와 양의 비유는 성도의 삶의 원형을 생각하게 해준다. 그 말씀을 통해 주님을 바라보면 그 분은 우리의 선한 목자이다. 양의 필요에 따라 먹이고 심지어는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분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우리가 그분의 음성에만 반응하는 양이어야 함을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양일까? 보통 우리는 이 말씀을 읽을 때 나 자신은 하나님을 주라고 목자라고 부르며 따르는 양이라고 생각하며 읽는데 어쩌면 우리의 묵상은 거기서 멈추어서면 안 될지도 모른다. 모든 양이 다 양이 아니기 때문이다. 스스로 오리라고 생각하며 오리의 무리 가운데 머무르던 백조라면 차라리 괜찮겠지만 만일 나라는 존재가 모양은 양이지만 염소 같은 인생을 꿈꾸는 염소 같은 양이라면 그 얘기는 완전히 다른 얘기가 된다.
역사 속의 이스라엘 백성은 이 부분을 간과했음에 틀림없다. 그들은 선택 받은 백성이라는 선민의식 속에서 자신들만 하나님께서 특별히 택하신 양 무리라는 생각 속에 살았다. 하나님께서 이집트에서 그들을 데리고 나오시자 그것으로 자신들의 양으로서의 정체성과 성품이 완성되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성경과 역사는 그들이 염소 같은 양들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겉으론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백성이었지만 그들의 사고방식과 관심사는 온통 이집트의 화려함과 가나안의 풍요로움뿐이었다. 심지어 하나님이 살리고자 계획하신 그 양 무리들 밖 이방인들에 대해서도 관심이 전혀 없는 이기적인 너무나 욕심 많은 백성일 뿐이었다. 그들은 분명 양이었지만 염소 같은 양이었다. 그래서 사랑해야 할 대상을 들이받기 일쑤였다.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양 무리 밖의 염소와 같은 이방인들을 용납하지 못했다.
그 결과는 끔찍했다. 양이라 스스로 자칭하던 이스라엘은 참 목자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한 것이다. 양들은 함께 머리를 맞대고 모함하여 자신들의 목자를 십자가에 못박았다. 양인 줄 알았으나 목자를 알아보지 못하는 염소 같은 양이었던 게다. 이쯤 되면 나는 양인가 염소인가의 질문은 의미 없어진다. 내가 정말 주님의 십자가를 따르는 성도라면 차라리 참 목자이신 예수님을 믿고 따라는 양 같은 염소가 되는 게 나을 것이다. 즉 참된 양, 참된 성도의 구분은 순종에 있는 것이다.
2015년 1월 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