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가 다니는 교회에서는 성찬식을 한 달에 한 번 하는데, 그때마다 굉장히 지루하다면서 성찬식을 너무 자주 하는 것도 문제가 있지 않으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 분은 저한테 동의를 구했습니다만 도무지 동의할 수 있는 얘기가 아니었습니다. 성찬식을 자주 해서 그 사람을 지루하게 만든 교회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성찬식을 지루하게 생각하는 그 사람의 영성에 문제가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수학 시간마다 골치가 아픕니다. 그렇게 골치 아픈 과목을 공부하게 하는 학교는 문제 있는 것 아닙니까?”라고 하면 뭐라고 해야 합니까?
예수님께서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면서 그것이 예수님의 몸이라고 했습니다. 또 잔을 주시면서 예수님의 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예수님의 몸을 우리에게 주셨으면 우리의 몸은 어떤 몸입니까? 예수님께서 친히 예수님의 피를 우리에게 주셨으면 우리의 혈관 속을 흐르는 피는 어떤 피입니까? 성찬식에 참예한다는 얘기는 예수님과의 합일(合一)을 선언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 몸과 우리 몸의 구분이 없습니다.
신학을 하기 전의 일입니다. 성찬예식을 할 때였습니다. 한 분이 잔을 받아들고는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그냥 눈물 몇 방울 흘린 것이 아니라 흐느끼는 소리가 예배당에 가득했습니다. 그 분이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울었는지를 짐작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성찬식 때 받는 떡과 잔은 우리를 위해서 찢기신 예수님의 몸과 우리를 위해서 흘리신 예수님의 피를 상징합니다. 그러니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 잘못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모자랍니다.
예수님이 우리 대신 돌아가셨다는 사실 앞에서 슬퍼하는 것이 우리의 신앙 책임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우리 대신 돌아가신 이유를 알아서 그 이유에 맞게 사는 것이 신앙 책임입니다.
남학생 중에는 없어도 여학생 중에는 성적이 떨어지면 이불 뒤집어쓰고 우는 여학생이 있을 것입니다. 성적이 떨어지면 얼마든지 울 수 있습니다.
성적이 떨어졌는데도 심드렁한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울었다고 해서 다음 달에 성적이 올라간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우는 것은 성적표를 받아온 날 하루로 그치고 다음날부터는 머리 싸매고 공부를 해야 합니다. 성적표 붙들고 한 달 내내 울기만 한다면 문제 있는 학생입니다. 성적은 어느 만큼 많이 울었느냐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맨 정신으로 누가 더 많이 공부했느냐에 좌우됩니다.
우리는 성찬식 때마다 예수님이 우리 대신 돌아가셨다는 사실 앞에서 눈물을 흘려야 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일단 눈물을 흘렸으면 그다음에는 눈물을 닦고 똘망똘망한 정신으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실을 감안하면 성찬식 때마다 ‘주님, 나를 위해서 피 흘리시고……’라고 하며 눈물을 흘릴 틈이 없습니다. 오히려 어금니를 깨물어야 합니다.
“앞으로는 정말 정신 바짝 차려서 예수를 믿어야 하겠구나!”라는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내용을 모르면 신앙이 이상하게 됩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고작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주일에 예배 참석하는 것과 십일조 하는 것, 그리고 자기한테 아쉬운 일이 있을 때 그걸 해결해달라고 기도하는 것뿐이게 됩니다. 우리한테 있는 신앙이 그것이 전부라면 다른 종교와 다를 것이 없지 않습니까? 예배 참석과 헌금, 기도가 없는 종교는 없습니다.
다른 종교를 예로 들 것도 없습니다. 점쟁이나 무당을 찾아가는 경우는 어떻습니까? 일이 있을 때마다 점쟁이를 찾아갑니다. 두둑하게 복채를 내는 것은 물론입니다. 우환이 있으면 무당을 불러서 굿도 합니다. 새벽마다 치성을 드리는 사람도 많습니다.
열심으로만 얘기하면 우리보다 훨씬 더 합니다.
어쩌면 이런 비유가 언짢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고 저들은 우상을 섬기는 사람인데 어떻게 같을 수 있느냐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섬기는 대상은 다릅니다. 그러면 섬기는 사람은 어떻습니까? 아무리 섬기는 대상이 다르다고 해도 섬기는 대상을 통해서 이루고 싶은 욕심이 똑같다면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어떤 사람이 예수를 믿는 사람입니까? 주일예배 안 빼먹고, 십일조 하고, 자기한테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하나님, 이거 해주세요.’ ‘하나님, 저거 해주세요.’라고 하는 사람이 예수 믿는 사람입니까?
성경은 그렇게 얘기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룬 사람이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현실적인 당부를 드립니다. 기도를 하되, 하나님께 무엇을 해달라는 기도는 그만하고 ‘하나님, 제가 무엇을 할까요?’라는 기도를 해보십시오. 아이를 키우는 경우로 생각해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부모한테 떼를 쓰는 것도 있고 부모가 아이한테 바라는 것도 있습니다. 둘 중에 어느 것이 중요합니까?
우리는 하나님을 통해서 우리 소원을 이루어야 할 사람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한테서 하나님의 소원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소원은 우리가 예수님처럼 되는 것입니다. 성찬식을 할 때마다 그 사실을 확인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그 일을 위해서 몸소 죽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