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사람은 아무데도 갈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목적지를 모르니 어디도 갈 수 없는 것은 당연한 말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자신이 목적지조차 알지 못하거나 아니면 목적지에 대한 관심조차 갖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는 걸 알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결국 그런 삶은 방황으로 이어지고 목적 없는 방황과 고민을 거듭하는 그들은 아무데도 가지 못하고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렇게 어디로 가야 할 지 몰라 불안에 떨고 시간에 쫓기는 인생을 사는 모습이야말로 현대인들의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자신의 능력과 나이와 신분에 상관 없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그 목적지를 알고 그 목적지로 가는 도상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하란 땅을 떠나 가나안으로 향하던 아브람이나 이집트를 출발해 가나안 땅으로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어가던 모세는 성도의 인생여정의 상징으로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성도인 우리는 아브람의 이야기와 모세나 야곱의 이야기를 우리의 인생역정의 길잡이로 삼아야 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이런 인물들이 향하던 가나안, 시온, 약속의 땅은 곧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곳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으로 풀어서 말하자면 하나님이 삶의 주인이 되시는 곳, 하나님이 우리를 통치하시는 곳을 의미하는 바실레이아, 곧 “하나님 나라”를 말합니다. 성도는 하나님 나라를 향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말은 성도인 우리의 인생의 방향이 하나님께로 향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물론 우리가 하나님께로 향한다는 것이 우리의 노력과 수고를 통해 하나님께까지 나아갈 수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우리가 회개하여 하나님께로 향하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 나라를 꿈꾸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을 때 하나님의 은혜로 주님이 우리에게 다가오셔서 맞아주신다는 뜻입니다. 마치 탕자가 아버지의 집으로 향했을지라도 아버지의 집에 다다르기 전에 아버지가 먼저 나와 기쁨으로 맞아주었던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탕자가 아버지의 집을 향해 빨리 뛰어갔기 때문에 아버지의 용서와 은혜를 입은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께로 나아가려 했기 때문에 아버지께서 아버지의 집으로 맞아들이신 것입니다. 탕자가 누리게 된 축복은 탕자의 노력의 대가가 아닙니다. 아버지에게로 향한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은혜입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이 이루시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는 말처럼 성도는 하나님께로 향하는 방향 설정에 있어서 만큼은 그 어떠한 양보도 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