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월 18일
강윤구 목사
목회의 길은 시간이 지나도 익숙해지는 법이 없다. 따끔따끔하다. 목회를 한다는 건 곧 목회를 하는 동안 끊임 없이 마음에 찔림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성도들에게 선포하는 일이기에 앞서서 나 자신을 향해 선포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성도들이 말씀을 묵상하도록 만들기에 앞서서 먼저 묵상해야 하고 온유와 겸손의 성품에 대해 논하기에 앞서서 나 자신이 주님을 닮아가는
인고의 시간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결국 그런 목회의 메커니즘은 목사인 내 자신이 목회를 하는 매 순간마다
내 가슴을 찌른다. 그래서
나에게 목회는 따끔따끔한 일이다. 성도를 권면하는 동시에 내 자신을 일으켜 세우며 성도 앞에 부끄러운 위선자가
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일은 내 자신의 연약함과 추한 모습을 핀셋으로 집어내기 때문이다. 아니 어떨 땐 따끔따끔한
게 아니라 욱신욱신 하다고 말해야 맞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평신도이건 성직자이건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닮도록, 그리고 하나님의 넓으신 사랑을 닮도록 부름을
받은 존재이기 때문에, 그 부르심에 부합하지 못한 나 자신의 실존적인 죄의 때를 닦아내기 위한 노력을 하다
보면 심신과 영이 경험하게 되는 모종의 고통은 피할 길이 없는 것이다. 세상에서 열매를 맺기 위한 모든 일이
그러하듯이.
추수를 기다리는 농부의 손이 부르트고 갈라지는 고통을 피할 길이 없듯이, 남편과 자녀들을 제대로 챙기는 살림꾼의 손에
물이 마를 날이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일이라
부르는 목회와 사역의 자리엔 주님의 눈높이에 맞는 사랑을 배우기 위해 굳어버린 마음의 밭을 말씀의 괭이와 호미로 기경하며 경험하는 따끔함은 피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다만 따끔따끔한 고통을 넘어서는 죽음의 십자가를 지신 주님의 그 놀라운 사랑의 사역
앞에서 위로를 받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