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2월 15일
강윤구 목사
애리조나 호피마을에서 선교사로 섬기는 동기 목사에게 소식을 들었다. 안 좋은 소식이기도 했지만 감사의 소식이기도 했다. 세브란스병원의 검사 결과 작년 10월 교회 건축 중 당한 불의의 사고로 인해 다친 각막은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소식이 전자라면, 4/5가 손상된 각막에도 불구하고 남은 1/5의 각막으로 인해 실명하지 않았으며 안경으로 시력을 바로 잡을 수 있다는 소식이 후자에 해당한다.
보통 각막의 두께는 500 마이크로 미터, 즉 0.5 미리 미터 정도가 된다고 하는데 동기 목사의 눈에 난 상처는 각막의 4/5를 찢어버렸지만 1/5의 각막을 남겨두었다.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의 깊이를 인간이 잴 방법이 없겠지만 오늘을 사는 우리의 눈높이에선 임태일 선교사의 눈에 겨우 0.1 미리 미터 남은 각막은 하나님의 은혜를 증언하는 증언이다.
성서의 욥기에 보면 욥은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고난의 현장에서 자신이 소유한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욥을 잘 아는 경건한 친구들은 자신의 신앙과 경험을 통해 욥이 경험하고 있는 고난의 원인을 분석해 보았지만 그 논리의 탁월함과 종교적 도덕적 타당성에도 불구하고 욥이 경험한 고난의 의미를 설명하지 못했다.
하지만 고난의 의미에 대한 해답은 의외의 곳에 있었다. 하나님은 욥에게 하나님께서 땅의 기초를 놓으실 때에 어디에 있었느냐고 물으셨다. 천지를 운행하시는 섭리가 누구에게로부터 왔는지 물으셨다. 땅의 넓이를 측량할 수 있는 지까지 물으셨다. 암사슴이 언제 새끼를 낳는 지도……. 그런데 고난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질문에 답하려 애쓰던 욥은 뜻밖에도 하나님 앞에 회개하며 모든 것이 주 하나님으로 인하였음을 고백하였다. 인간의 연약함과 무지함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을 보게 된 것이다. 그것으로 족했다. 하나님은 욥에게 회복을 주시되 갑절이나 주셨다.
어쩌면 우리는 현재 맞닥뜨리고 있는 고난의 현실을 분석하고 누구의 잘못인지 발견하면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결코 전부를 볼 수 없다. 우리는 우리의 얼굴조차 거울로 반사된 거짓 이미지를 통해서라야 볼 수 있는 연약한 존재다. 최첨단 현대과학의 이기를 이용해도 하나님의 옷자락에 붙은 먼지도 제대로 볼 수 없다. 하지만 우리가 그런 존재임을, 피조물임을 깨닫게 되는 기회야말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우리 인생에서 경험하는 1/5만 남은 각막의 상처는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의 깊이를 보여주는 영원한 하나님의 계시라고 할 수 있을 것이고 4/5가 아닌 1/5을 보는 것이 지혜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