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222

강윤구 목사

 

다윗을 다시 보게 되었다. ‘다윗과 골리앗이라는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 속의 주인공을 최근 다시 떠올리고 있다. 하나님 앞에서 크게 범죄한 적이 있던 다윗이지만 그 다윗이 위대해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다윗 하면 사람들은 흔히 골리앗을 먼저 떠올린다. 다윗이 믿음으로 골리앗과 싸워 이겼던 일이 워낙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서도 손꼽히는 중요한 사건이라고 믿는다.

생각해 보니 나 자신도 그렇게 생각해왔던 것 같다. 하지만 최근 그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다윗 하면 찬양의 사람이라는 말이 먼저 떠오른다. 그리고 ~, 참 대단한 사람이구나하는 혼잣말이 절로 나온다. 어떻게 하면 파란만장한 고난의 시간, 숨막히는 고통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떠올리고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었을까? 다윗은 수금을 탈 줄 아는 음악깨나 하는 사람인 것은 성경을 읽은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니 찬양하는 일을 좋아한다고 고난의 때에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다고 예상할 수는 없다.

적어도 내 자신이 경험했던 고난의 시간을 되돌아 볼 때 그렇다. 나는 그냥 참고 견뎠던 것 같다. 그렇게 힘들게 버텨내며 지금까지 왔고 도덕 교과서를 학생들에게 읽어주면서 도덕적 윤리적 문제 앞에 처절하게 고민하며 스트레스를 받는 도덕 선생처럼 목회를 해온 것이다. 하지만 내가 지나온 고난의 시간 속에선 찬양과 감사의 시간은 눈을 씻고 찾아만 찾아낼 수 있을 만큼 그리 익숙한 삶의 일부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저 지나고 나서야 그것이 은혜였음을 찬양했어야 하는 일들이었음을 깨닫고 있을 뿐이다.

내게 찬양의 시간은 좋은 일이 있을 때와 교회에서 찬양을 부르는 시간이었을 뿐이었던 것이다. 반면 성경이 기록하고 있는 다윗은 고난의 현장까지 찬양의 자리로 하나님 앞에 무릎 꿇는 자리로 만들고 있다. 다윗에게 찬양의 시간은 언제나 오늘, 언제나 지금이다. 다윗은 찬양을 통해서 자신의 전 삶의 영역을 하나님께 드렸다. 다윗이 지은 시편을 읽다 보면 하나님을 그렇게 찬양할 수 있다는 게 그저 놀라울 뿐이다. 다윗을 음란하고 교만한 왕으로 쉽게 봤던 내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사람은 고난을 만날 때마다 자신의 고통에만 집중하기 마련이다. 자신이 생각하는 해결 방식만을 바라보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걸 잊기 마련이다. 하지만 다윗이나 바울 같은 찬양의 사람은 고난이 찾아오든 복된 일이 일어나든 한결같다. 그 자리에서 그 시점에서 하나님을 찬양할 이유를 발견해낸다.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만난다. 찬양의 사람 다윗은 상황과 상관 없이 오늘 만나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다. 고난의 시대 21세기를 사는 성도들이 다윗을 다시 봐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