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 1일

                                                                                                                                                                                                                                                                 강윤구 목사

너무나도 유명한 17세기 네델란드의 화가 렘브란트는 자신의 인생의 말년에 ‘탕자의 귀향’이라는 그림을 그렸다. 높이가 2미터 50이나 되는 이 엄청난 그림은 인생의 방황을 끝내고 아버지의 품에 안긴 탕자의 모습과 함께 렘브란트의 인생 여정의 마지막을 보여주고 있다.

이 그림 안에는 다섯 명의 모습이 나오는데 두 사람은 뒤에서 한 사람은 옆에서 아버지의 품에 안긴 탕자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그림의 명암 속에서 그림의 한 지점으로 우리의 시선을 이끈다. 탕자를 끌어 품으로 당기는 아버지의 두 손이다. 그저 말없이 끌어안는 아버지의 얼굴과 함께 그림에서 가장 밝은 부분이다. 헨리 나우엔은 이 그림을 묵상하면서 ‘탕자의 귀향’이라는 책을 쓰기까지 했을 정도로 이 그림에서 깊은 영감을 얻었는데 그가 주목했던 그림의 장면이 바로 아버지의 두 손이었다.

아버지의 두 손은 이상하리만큼 다른 모습이다. 오른 손은 어머니의 손이 아닐까 싶은 섬세한 손이고 왼손은 아들을 되찾기 위해 험한 길을 헤쳐온 거친 손이다. 나는 탕자 혼자 방황하며 힘들었으리라 생각했었지만 이 그림에서 나는 볼 수 있었다. 그 방황의 길을 끝마치고 아버지의 품에 안길 수 있었던 이유가 아버지의 이 두 손 때문이라는 것을. 그 두 손은 탕자를 지탱해준 은혜의 손이었다. 탕자가 혼자 방황했을 거라는 생각은 애초부터 틀린 생각이었다. 그 방황의 자리에 아버지는 탕자를 어루만지며 함께 계셨고 험한 길을 헤치며 앞서 가셨던 것이다.

부와 명예를 누렸지만 아픔의 가족사를 지녔던 렘브란트는 어쩌면 아버지의 품에 안긴 자신을 그려 넣었던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화려한 이력 속에서 아들, 큰 딸, 작은 딸, 아내를 차례를 잃었고 두 번째 아내가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등 아픔과 고난의 시간을 견디며 산 사람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방황하면 할수록 자신이 중심이 되어 상황을 바라보고 결국 더 고독해진다. 그러나 아버지를 기억하는 자의 방황은 아버지의 집으로 발길을 이끌고 결국은 고난과 방황의 끝에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인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의 손을 비추어주는 법이다.

고난은 그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다. 고난을 통해 무엇을 바라보고 무엇을 깨닫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방황과 고난의 길에 승리한 인간은 있을 수 없다. 주님의 은혜로 되돌아 와서 그 은혜로 돌보시던 아버지의 손길을 깨닫는 자가 있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탕자의 이야기는 탕자를 끝까지 기다려 품어주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이야기일 뿐이다. 나나 이 땅을 살아가는 어느 누구도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될 수 없다. 그저 탕자일 뿐이다.

자신의 길을 찾겠다고 아버지의 집을 떠나던 탕자의 방황을 끝내고 아버지의 집으로 되돌아가는 여정을 시작할 때다. 방황을 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방황을 끝내고 회개하며 돌아왔다 한들 이 탕자 자신의 스토리가 뭐 중요하겠는가? 지금은 탕자를 끌어 안는 아버지의 두 손을 묵상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