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 8일
강윤구 목사
살다 보면 어느 순간, 어떤 지점에서든 맘대로 할 수 없다고 느끼는 때가 생긴다. 어찌 보면 이 순간에 매우 중요한 일이 일어나게 된다고 말할 수 있다. 누구나 이 시점에서는 갈림길에 서게 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난 이제 올무에 걸려서 이제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니 그저 상황이 허락하는 대로 그냥 되는 대로 살 것이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내 한계를 보았으니 나와 천지만물을 지으신 조물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살 것이다.”
전자의 의견은 마치 인생에 달관한 도인의 인생처럼 보이지만 사실 오늘을 사는 대다수 사람들의 생각이고 매우 수동적이고 비관적인 관점을 가지고 살아가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일 뿐이다. 반면 후자는 자신의 한계와 문제를 통해 자신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올무를 발견한 후 그 올무에서 벗어나게 하시는 하나님과 만나 창조주 하나님 구원자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만나 그분의 손으로 해방을 경험하는 신앙인의 관점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인간이 인생을 살아가는 과정에 깨닫게 되는 것이지만 성경은 이미 우리가 죄와 사망의 법이라는 올무에 메여 있다는 것을 증거해 주고 있다. 그러나 모든 올무가 그렇듯이 몸부림치는 것만으로는 그 올무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오히려 벗어나려고 할 때마다 상처가 나고 고통을 느끼게 되면 어느 순간 그냥 수동적으로 그 올무에 붙잡혀 살기로 맘먹는 경우가 있다. 죄에 메인 인생의 모습이다.
하지만 오히려 그러한 실존적인 순간에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선 죄인 된 피조물에 불과하다는 걸 깨달음과 동시에 진정한 해답을 찾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은 인간의 한계를 통해 전지전능하신 주님을 찾게 되고 그분을 만나게 될 뿐 아니라 그 분의 계획에 능동적으로 순종하여 결국은 그 올무에서 벗어나게 된다. 누군가는 자기 손으로 올무를 벗겨낼 수 없다 생각하여 올무에 붙잡힌 자로 살고 누군가는 자신이 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되면서 올무를 풀어낼 수 있는 위대한 하나님을 만나 해방을 경험하는 것이다.
다윗은 시편 124편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우리의 영혼이 사냥꾼의 올무에서 벗어난 새같이 되었나니 올무가 끊어지므로 우리가 벗어났도다. 우리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의 이름에 있도다.”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올무에 갇힌 자신을 똑바로 보게 되었을 때 성도가 깨달아야 할 것들을 확인할 수 있다. 첫째는 우리가 꿈쩍도 할 수 없는 이유가 올무 때문이라는 사실이고, 둘째는 이것이 육체적이거나 경제적인 그런 종류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영혼의 문제라는 점이다.
우리의 심령이 올무에 갇힌 채 그대로 살겠다고 맘 먹으면 우리는 죄인 된 인생의 굴레에, 사망의 권세 아래 놓이게 될 뿐이다. 오히려 우리 영혼은 하나님의 영을 찾아야만 한다. 창조주를 만나야 한다. 나를 지으신 분을 인정해야 한다. 다시 말하자면 나의 연약함만 인정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나약함만 깨닫고 자포자기하는 것이다. 세상과 타협하는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연약함으로 인해 창조주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을 깨닫는 사람은 그 창조주 하나님의 손으로 구원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