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삶에는 용납함이 있어야 한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5 7절에서 말하기를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라고 했다. 죄인인 우리를, 피조물인 우리를 한없는 은혜로 용납해 주신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이 말씀에 귀 기울이는 것은 성도된 우리에게 지혜가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가 무엇인가에 집중해야 한다. 결코 우리가 드리고 싶은 예배와 우리가 하고 싶은 영광을 돌리는 방법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서로 용납하기를 요청하신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의 모든 현장에서 우리의 이웃을 용납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물론 우리가 우리의 이웃을 용납하지 못하는 데에는 나름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첫째 이유는 우리가 자신만을 사랑하는 이기적 존재이기 때문이고 또 다른 이유는 남을 사랑할 수 없을 만큼 우리의 이웃에 대해 지나치게 비판적인 정죄의 태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죄 많아 보이는 이들을 이방인 같아 보이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것이 못마땅한 것이다. 이 모습은 마치 예수님 시대의 제사장들과 서기관들 그리고 열정적인 유대교 신앙을 가졌던 바리새인들의 모습이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가 신앙적으로 성숙해지면 이웃을 서로 용납할 수 있게 된다.


선진국과 후진국을 구별할 수 있는 방법 중에는 이런 방법도 있다. 사회 안에서 장애를 가진 이웃들을 쉽게 볼 수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 하는 기준이다. 선진국에 가면 사회 전반에 장애우들을 쉽게 볼 수 있는 반면 후진국에 갈수록 방치되거나 따로 구별하여 몰아놓은 모습을 보게 되기 때문이다. 선진국에서 장애우들을 쉽게 볼 수 있는 이유는 그 사회 안에서 약한 사람, 부족한 사람을 용납할 줄 알기 때문이다.


사순절을 통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묵상하면서 죄 많은 우리를 용납하신 하나님의 은혜의 깊이를 경험한다. 이 시간을 통해 우리가 용납하지 못하던 사람들을 용납할 수 있는 삶을 배워간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이런 노력을 기뻐 받으시고 영광을 받으시리라 생각하니 지난 날 가졌던 이웃을 향한 정죄의 태도에 스스로 꾸짖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