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수업시간을 떠올려 본다. 선생님이 교과서를 들고 중요한 부분에 밑줄을 긋게 하시면 학생들은 저마다 자기의 방식으로 책에 밑줄을 긋고 공부했다. 물론 어떤 경우엔 밑줄을 아예 긋지 않는 사람도 있었고 어떤 학생은 형형색색으로 자까지 사용해서 예쁘게 줄을 그어 보기 좋게 책을 꾸미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밑줄을 그어놓았다고 공부하는 건 아니라는 걸 우리 모두가 안다. 예쁘게 참고서처럼 교과서를 꾸며놓았다고 그 책의 주인이 공부를 잘 한다는 보장도 없다.
신학교 1학년이었던 1990년도 때 일이다. 지금은 연예인이 된 신학교3년 선배인 남궁연씨와 함께 공부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에도 유명한 밴드를 위해 드럼 세션맨으로 활동하느라 공부에만 열중할 수 없었지만 가족들이 모두 서울대 이대 등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학자 집안이라서 그런지 본인도 학교 공부도 꽤 잘 하는 편이었는데, 특히 이 선배는 공부하고 책을 읽고 세미나의 발제를 하는 방식이 특이했다.
예를 들어 중세 교회사의 어느 부분을 발제한다고 하면 그 내용을 자기 방식으로 그림과 도표로 만들어내서 아주 간단하게 모든 내용들을 정리해냈다. 책 내용을 그냥 요약하지 않고 자신이 소화시켜 이미 자기의 지식이 된 내용을 가지고 발제했기 때문에 세미나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그 내용을 들을 때 참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아마도 누구나 밑줄 친 내용을 읽어준 게 아니라 자신이 공부한 내용을 전달해 주었기 때문인 것 같다.
성경 말씀을 읽고 듣는 일은 신앙생활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 말씀이 우리의 삶의 길잡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말씀에 밑줄만 그어놓은 채 생활에 변화가 없다면 적어도 그 말씀은 우리 삶 속에서는 죽은 말씀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말씀을 읽고 어디에 밑줄을 그었는가 보다는 밑줄 그은 말씀이 삶 속에 밑줄이 그어진 모습으로 드러날 수 있는가가 더 중요한 것이다.
그것은 마치 냉장고에 맛있는 음식을 골고루 채워놓은 것보다는 그 음식을 잘 먹고 소화시켜 건강하게 사는 모습이 더 가치 있고 중요한 것과 마찬가지다. 하나님 말씀은 장식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도인 우리에게 말씀은 무엇일까? 줄 긋기를 위한 교제는 아닐 터,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살아 있는 말씀으로 드러나는 게 가장 아름답지 않을까 싶다. 모든 성도들이 단순히 성경에 밑줄 긋는 일을 넘어 말씀이 삶의 무늬가 되기를 기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