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전통 문화 가운데 서예라는 것이 있다. 붓으로 글을 쓰는 일을 말하지만 중국에서는 서법이라고 부르고 일본에서는 서도라고 부르는 것이기 때문에 같은 일이면서도 다르게 보면 같은 일이 아니다. 중국에서 서도라고 부르는 붓글씨는 그 글을 쓰는 법칙을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서법이라고 했고 자기수양을 중시했던 일본에서는 서도라고 불렀다. 하지만 우리 조상들은 붓으로 글을 쓰는 일을 서법과 서도의 차원을 포함할 뿐 아니라 예술의 지경으로 끌어올렸고 그래서 배운 학문이나 자신의 감정과 사고를 글로 표현하는 일 자체가 하나의 수단으로만 보지 않고 예술적인 삶의 표현으로 보기까지 했다.


그런데 이 서예를 배우다 보면 중봉이라는 것을 배운다. 붓을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붙들고 힘을 한 곳에 모으도록 하는 일인데 말처럼 쉽지 않아서 서예의 대가들조차도 자신의 감정이 요동치면 중봉이 되지 않아 글씨가 바로 써지지 않고 붓이 꼬이게 된다. 그래서 서예에 조예가 깊은 사람일수록 중봉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서예는 그냥 글을 예쁘게 쓰는 일이라기보다는 그 글을 쓰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꼬는 붓을 끊임 없이 풀어가며 하는 작업이다. 이 작업을 할 줄 모르면 그냥 글씨일 뿐 서예가 될 수 없다.


신앙생활에도 이 두 가지 일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어느 쪽으로도 흔들리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신앙의 중봉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또한 일들이 꼬이고 관계가 꼬이는 인생의 굽이굽이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돌이켜 꼬이고 얽힌 것들을 풀어내면 앞으로 나아가야 할 필요가 있다. 풀어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일은 더 최악의 상황을 만들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아름다운 인생이 될 수 없다. 어쩌면 우리의 신앙생활이 더욱 빛을 발할 수 있는 것은 꼬인 문제 속에서 뜻밖의 상황 속에서도 신앙의 중심을 지켜내며 하나님만을 붙들고 인고했던 기도 생활이 성도의 삶을 더 값진 진주처럼 만들어주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