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의 모든 성도는 쓰라린 모래알을 품어 진주로 만들어내는 조개와 같다. 뿐만 아니라 그 성도가 안고 있는 고난은 어떻게 다루고 이겨내느냐에 따라 아름다운 진주도 될 수 있고 조개의 생명을 빼앗아가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 물론 모든 열매의 바탕이 고난과 역경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지라도 험한 풍랑과 아린 아픔을 이겨내어 얻은 열매는 보석보다 가치 있고 아름답다는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다.
목회를 하다 보면 욥의 고난과 비견할 만큼 힘든 아픔을 끌어안은 채 십자가를 지고자 애쓰는 성도들을 볼 때가 있다. 목자로서 양의 그런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참으로 힘들다. 남의 십자가를 져줄 수 없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인류를 위하여 대속의 십자가를 지셨지만 엄밀히 말해서 그 십자가가 우리의 것은 아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우리의 십자가를 지고 따라오라고 하셨다. 우리가 져야 할 우리를 위해 주어진 십자가라면 그것은 우리에게 주어질 하나님의 복과 은혜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고난이라 하더라도 우리의 십자가라면 끝까지 지는 것이 복된 것이다.
조개가 진주를 만들어내는 데는 최소 2-3년이 걸리고 성공 확률도 30퍼센트가 채 되지 않는다고 하니 고난의 씨를 품어 진주를 만들어내는 일보다 더 어려운 십자가를 지는 성도의 일은 더 값진 것이다. 진주조개의 한살이를 찾아보니 조개가 모래알과 같은 이물질을 진주로 만들어내는 과정은 그 이물질을 감싸기 위해 쏟아낸 체액이 끊임없이 쌓이고 또 쌓이면서 이루어진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자신의 체액으로 쉬지 않고 아픔을 감싸 안는 조개의 행위 자체가 값비싼 진주보다 더 아름답고 가치 있다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성도가 고난을 이겨내어 얻은 열매보다 고난의 십자가를 끌어 안고 지고 가는 성도의 삶 자체가 더 복되고 아름답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