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지나고 완연한 봄이 되면서 나무들이 꽃을 피우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인생의 의미가 새롭게 보인다. 모든 나무의 한살이가 맞추고 있는 궁극적인 초점이 열매를 맺는 일인 것처럼 인간의 삶도 열매를 맺는 일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시선은 꽃에 집중되기 쉽지만 모든 꽃의 존재 목적은 열매를 맺는 일이기 때문이다.


사실 자칫 잘못하면 우린 아무 때나 화려한 꽃을 피우는 일에 집중하다가 아무런 열매를 맺을 수 없게 될 수도 있다. 나무가 꽃을 피우는 이유가 열매를 맺는 일에 목적이 있다면 인간이 자신의 삶에 꽃을 피우고자 하는 목적은 대부분 그 화려함을 통해 자기 만족을 얻거나 다른 사람들 앞에 과시하기 위한 것일 때가 많다. 잘못된 목적을 가진 인간의 노력이 헛된 까닭이다.


하지만 꽃은 아무 때나 피우는 것이 아니다. 제 때에 꽃을 피워야 벌과 나비들을 통해 꽃가루가 전달되고 그로 인해 비로소 열매를 맺게 된다. 어떤 꽃은 하루 이틀 만에 꽃이 시들어버리기도 하기 때문에 꽃을 피우는 시기의 타이밍은 곧 생존의 문제이고 열매의 문제일 수 밖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꽃은 과시용이 아니라 열매를 맺기 위한 것이며 꽃가루를 전달하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시도 때도 없이 꽃을 피우고자 한다. 나무가 긴 겨울 동안 여름엔 흔하던 그 수많은 잎사귀조차 내지 않고 시린 겨울의 고난을 인내로 기다리는 모습과는 너무 다르다. 그렇다. 인간의 성급함은 수많이 인생의 꽃이 열매도 없이 시들어버린 이유였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시험과 연단의 시간을 잘 기다리지 못한 채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와 힘과 시간을 아무 때나 꽃피우고자 하는 욕심을 채우기 위해 탕진해 버린 것이다.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보여준 모습이 그랬다. 광야의 길을 걸어가며 꽃을 피울 시간을 기다려야 했지만 그들은 광야에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매어 그 광야 한가운데서 그 열매를 따먹으려 했다. 그들의 실망이 클 수밖에 없는 원인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하나님의 때가 이를 때까지 소망 속에 기다릴 줄 아는 성도야말로 꽃과 열매를 모두 누릴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 그래서 역경의 길을 가는 우리는 겨울을 나는 나무에게서 지혜를 얻어야만 한다. 한 겨울엔 잎사귀도 도움이 되지 않고 꽃을 피울 때도 아닌 것이다. 인내를 모르는 식물이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처럼 인내를 모르는 인간, 아무 때나 꽃만 피워대려는 인간은 결코 열매를 맺을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하나님의 시간이 이르렀을 때에 열매를 맺기 위하여 시련과 고난의 시간을 소망 가운데 인내로 이겨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