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의 성도다움은 상황에 반응하여 행동하느냐 하나님의 뜻에 반응하여 행동하느냐의
차이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모든 인간은 상황에 반응하게 되어 있지만 상황이 바뀔 때마다 이리로 저리로 치우치는 모습은 바람이 나는 겨의 모습보다 더 나을 것이
없다. 상황 앞에 무기력해진 인간은 하나님께서 만물의 영장으로 삼고 당신의 형상을 따라 지으신 본래적인 인간의
정체성과는 너무 동떨어져 있다.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로부터 벗어나 있다는 얘기다.
간단히 말하자면, 아담과 하와는 자신들이 마주대한 특별한 상황 앞에서 하나님의 뜻을 저버렸다.
예상하지 못한 뜻밖의 상황(그것은 좋아 보이는 것일 수도 있고 그 반대일 수도 있다)
앞에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행동하지 못했고 그 결과는 참담했다. 하나님과 단절된
죄와 사망의 권세 아래에 놓이게 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오늘
우리가 심각하게 고민하며 마주대하는 상황들, 문제들은 21세기를 사는
아담과 하와인 우리들에게 영적인 차원의 선악과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우리가 제일 힘들어하는 상황 중 하나는 가장 중요한 관계가 깨어져서 신뢰하거나
사랑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다. 예컨대, 성도들은 교회에서 특정 교우나 목회자와의 관계에서 실망이나 상처를 경험하고 갈등,
방황 또는 분노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성도들에게 이것은 뜻밖의 상황이고 성도들은
그 상황에 감정이나 이성이나 경험 등을 통해 반응하기 쉬운데 대개의 경우 그 상황은 우리 자신의 성도로서의 생활에 큰 장애물을 만드는 경우가 많다.
사울은 자신을 위해서 하나님이 기름 부은 사람 다윗을 죽이려고 했다. 자신보다 더 인정받고 명성이 높아진 다윗이 자신의
왕으로서의 입지를 위태롭게 한다고 느끼는 상황에 감정과 권력과 분노로 반응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상황에
반응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실수를 반복하게 되었고 놀랍게도 다윗의 손으로 넘어지지 않고 상황에 반응하던 자신의 태도가 덫이 되어 스스로
넘어지고 말았다.
반면에 다윗은 자신을 죽이기 위해 십수년을 괴롭혔고 죄 없는 제사장과 가족을
죽인 사울왕이 잠들어 있는 현장에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행동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람에게 주어진 특별한 시험을 통과했다. 주어진 상황에 자의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소중히 여긴 것이다. 바울 사도는 로마
교회에 편지하여 말하기를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느니라”(롬 12:9)라고 했다.
상황을 무시하는 사람은 시대착오적인 사람이며 어리석은 사람이지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보다 상황의 변화 추이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의 잔치에 참여하기 보다 자신이 심은 분노와 타협과 갈등의 열매만을
거두는 신앙생활의 실패자가 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순간순간 바뀌는 상황에 집착하기보다 언제나 한결같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함으로 길을 찾는 사람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