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인생의 전환점이 되어준 뜻 깊은 여행이 하나 있다. 97년 세브란스 병원에서 1, 2차에 걸친 암수술을 받은 직후 나는 심한 심적, 육체적 무기력증으로 인해 전도사로서의 사역을 감당하지 못할 지경이 되었다. 지친 상황에서 가족과 성도들의 눈치를 보며 사역을 하는 것은 분명 바람직하지 못했고 혼자만의 여행은 하나의 돌파구였던 셈이다. 결국 버지니아 작은아버지댁에서 잠시 머문 후 워싱턴 DC의 유니온역에서 앰트렉을 타고 보스톤으로 향했고, 이후 미국 동부를 종단하는 배낭여행을 했다. 그 여행은 나 자신에게 자신감과 신앙적인 성숙의 기회가 되었고 많은 것을 경험한 귀중한 시간이었는데 그 중 깨닫게 된 중요한 한 가지가 바로 지도의 중요성이었다.

길은 누구나 갈 수 있지만 모두가 목적지에 도착할 수는 없다. 열심과 최선이 해답이라 생각하는 사람도 많고 나름 지름길을 찾아 나설 수도 있지만 열심과 최선으로 지름길을 발견했다 하더라도 지도가 없으면 그 열심과 발견한 지름길조차 의미가 없다. 길을 가는 일은 언제나 지속적인 확인의 과정을 통해 온전한 방향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특히 물리적인 길이 아니라 인생의 길, 신앙의 길을 가는 성도의 여정이라면 분명 특별한 목적에 맞는 지도가 필요하다는 걸 생각해 볼 수 있다.

하지만 또 다른 중요한 이슈가 있다. 어떤 지도를 가지고 있느냐에 관한 것이다. 배낭 여행 때 오래 전 미국에 이민오신 작은아버지의 지도를 일부 사용한 적이 있었다. 문제는 그 지도가 작은아버지가 미국에 오셔서 처음 구입하신 1980년도의 지도였고 결정적인 시점에 지도를 들고도 길을 찾을 수 없는 일이 많았다는 점이다. 일부 내용은 맞지만 그 지도에는 새로 난 길이 존재하지 않았다. 심지어 당시 여행 중 구입한 여행자 가이드조차 때론 편집상의 오류로 인해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기도 했다. 신앙생활에서 내가 들고 있는 지도가 정말 제대로 된 지도인지 우리는 영적인 점검을 해야만 하는 까닭이다. 그래서 우리에겐 변치 않으시는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 필요하다.

난 가끔 심방을 갈 때 성도들의 길 안내를 받게 될 때가 있는데, 가끔은 그 일이 매우 힘든 일일 수도 있다. 예나 지금이나 일부 자매님들은 주소를 알려주시지 않고 자신의 기억과 짐작으로 길을 안내해 주시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목사님, 그 마트 지나시고 조금만 오시면 큰 전봇대가 나오는데요 거기서 우회전 하신 후 한참 오시면 왼쪽에 2층집이 하나 있어요, 거기서 오른쪽을 보시면…” 하는 식이다. 식은땀을 흘리며 스릴이 넘치는 안내를 받으며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목적지에 도착하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엔 결국 주소를 받아 네비게이션을 통해 도착하는 경우도 있다. 신앙의 길을 갈 때 신앙의 동료들의 충고와 도움은 분명 큰 힘이 되지만 결코 절대적 기준이 될 수 없는 까닭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지도가 필요할까? 나라고 하는 존재를 지은 분도 하나님이시고, 나에게 삶의 방향과 목적을 주시고 사명을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라면 당연히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말씀의 지도를 손에 쥐고 있어야 하고 읽고 또 읽고 주위를 살펴보며 확인하고 또 확인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엔 앞서 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뒷모습이 나온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시대를 뛰어넘는 학식이나 경험이 아니다. 그 예수님의 뒷모습을 잃어버리지 않는 일이다.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손에 말씀의 지도를 들고 있지 않은 사람들, 잘못된 지도를 들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이제 말씀의 지도를 준비하자. 그리고 천로역정의 주인공 크리스찬처럼 그 말씀을 지도 삼아 길을 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