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의 삶은 종종 경주로 비유되곤 하는데, 보통 경주 중에서도 마라톤 같은 장거리 경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왜 그럴까? 그것은 장거리 경주에서는 잠시 잠깐 막힘 없이 힘들이지 않고 빨리 뛸 수 있다는 것이 곧 승리를 보장하는 것이 아닐 뿐 아니라, 한 동안 숨이 차고 고통스러워 빨리 달릴 수 없다고 해서 경주에서 패배한다는 뜻이 아니기 때문이다. 즉 성도의 삶 가운데 부침이 있다고 할지라도 지속적인 노력이 인내가 마지막까지 필요한 것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히브리서 12장에서 성도라면 누구나 이미 참여하고 있는 한 경주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이 말씀을 묵상하다 보면 성도 개인으로서의 삶과 나를 제외한 이웃 신앙인들의 삶, 즉 시공을 초월하여 인류 역사 속에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믿음의 경주에 참여했던 앞서간 신앙의 선배들, 즉 믿음의 증인들의 삶을 바라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의 주인이심과 동시에 그들을 온전하게 하시는 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함께 바라보라는 권면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즉 믿음의 경주는 혼자 감당해야 할 경주인 동시에 혼자서만 감당하는 경주가 아닌 셈이다. 왜냐하면 홀로 신앙의 경주를 치렀던 수많은 증인들이 있었을 뿐 아니라 그들보다 앞 서 가신 예수 그리스도가 있기 때문이다.

이 경주에는 중요한 두 개의 열쇠를 발견할 수 있는데,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이고 또 하나는 인내이다. 앞서간 믿음의 경주의 승리자들은 그들을 온전하게 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본 사람일 뿐 아니라 그 신앙의 경주에서 겪게 되는 고난과 징계 앞에서 믿음으로 인내하는 사람인 것이다. 누군가는 기나긴 믿음의 경주라는 여정에서 자신의 직감과 본능을 의지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지 않아 방향을 잃은 반면, 또 다른 누군가는 자신의 죄와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바라보고, 그분의 십자가를 바라봄으로써 다시 방향을 찾는다.

장거리 경주에서 우리가 흔히 경험하는 일이지만 경주엔 언제나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드는 시점이 있기 마련이다. 더 이상 인내하고 싶지 않은 상황이 있기 때문이다. 그 경주의 의미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 경주 속에서 경험하는 고난과 징계를 실패와 좌절과 아픔으로만 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를 향하신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 사람은 그 여정에서 겪는 고난조차 우리에게 유익을 주시고자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성장의 시간으로 보는 것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히 12:11절에서 이렇게 말했음을 기억하자.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