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은 우리의 조상일까?
2015년 9월 27일
아브라함은 우리의 조상일까? 대답은 예 일 수도 있고 아니오 일 수도 있다.
보통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을 그들의 조상이라고 부른다. 반면 크리스천들은 아브라함이
자신들의 믿음의 조상이라고 여긴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자신의 정체성, 자신의 신앙 전통의 뿌리를 얘기할 때 아브라함의 이름을 들먹이는 걸까?
이유는 이렇다. 먼저 유대인들에게 아브라함은 생물학적으로 볼 때, 그리고 신앙의 뿌리로 볼 때 여호와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하나님께서 택한 민족의 시작점이므로 아브라함의 이름을 거론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그가 죄 가운데 거하면 하나님의 이름조차 모르고 살아가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택하여 부르신
부름에 믿음으로 응답하였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인도하는 대로 행하면 아브라함과 동행하시고 그의
자손들에게 같은 복과 은혜를 베푸시겠다고 약속하셨고 실제로 이삭과 야곱과 같은 언약을 세우셨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아브라함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과 아브라함에게 허락된 하나님의 은혜가 생물학적으로도 신앙전통으로도 자손이 되는 자신들에게 주어진다고 믿었으니
언제나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믿고 고백하는 것은 당연했을 것이다.
반면 크리스천들은 자신을 믿음이라는 측면에서 아브라함과 연결한다. 그래서 초대 교회는 아브라함의 생물학적 자손,
율법을 지키는 신앙의 전통을 가진 유대인들과 오직 믿음만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이방인 출신 크리스천들이
갈등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정말 아브라함의 자손, 언약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을 입는
일은 유대인이냐 크리스천이냐, 생물학적 아브라함의 자손이냐 믿음의 후손이냐의 중 하나를 택일하는 문제로 환원시킬
수 있을까? 어쩌면 우리는 질문을 잘못했을지도 모른다.
마태복음 3장에 보면 세례요한은 죄를 회개하는 세례의 자리에 나아온 바리새파 사람들과 사두개파 사람들을
보고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더러 다가올 진노를 피하라고 하더냐? 회개에 알맞은 열매를 맺으라. 너희는 행여나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의 조상이다’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을 일으키실 수 있다”라고 했다. 즉 나의 생물학적, 종교적,
문화적 배경으로서의 전통은 결코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은혜의 백성으로서의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정체성을 결코 확인해 주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주의해야 하는 말은 “회개에 알맞은 열매를 맺으라”는 말이다. 그리스도 예수의 길을 예비하러 온 세례 요한은 그리스도를 영접하기에 앞서서 회개에
알맞은 열매를 강조했다. 즉 구원 받을 사람으로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자부하기에 앞서서 회개의 열매와 증거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에게 전통이나 교리가 없어서 구원이 없는 게 아니고 믿음의 고백이 없어서 구원이
없는 게 아니다. 우리는 구원 받을만한 백성답게 주님께로 되돌아가 회개한 자의 삶의 열매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아마도 회개에 알맞은 열매를 맺은 사람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말하는 게 맞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