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2015년 10월 4일
나는 이번 주일로 잡혀있던 야외예배의 일정을 우천으로 인해 연기하게 되면서
양가 감정, 즉 정반대의
감정을 동시에 느끼게 되는 일을 경험했다. 하나는 교회의 계획을 일정대로 치르지 못한 것에 대한 실망과 아쉬움의
감정이고, 다른 하나는 나와 내 교회가 아닌 이 땅의 다른 만물(사람과
자연 등을 모두 포함하여)들에 대해 인식하게 된 일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다.
주일날 비가 온다는 예보는 어렸을 때 학교 소풍이 있는 날이나 운동회가 있던
날 아침에 비가 쏟아졌을 때 느꼈던 감정을 떠올리게 했다. 아쉬움과 실망.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자신이 원하고 계획했던 때에 하고
싶어하는 것은 모든 인간이 가진 마음이기에 그 기대를 하나님께 걸었다가 실망하게 되면 실망과 원망의 마음이 드는 것도 인지상정인 것이다.
그 과정 속에서 사람이 느끼는 실망과 좌절의 감정이 대부분 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성에서부터 온다는 걸 알 수 있다.
아이들은 소풍 가는 날 비가 오지 않아야 좋은 날이지만, 성인이 된 지금 되돌아 보면 인생에는 비가 오는
날도 있다는 걸 어려서 깨닫게 된 건 결코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다. 인생에 비가 내리지 않고 햇볕만 내리쬐는
날만 계속된다면 그 인생의 밋밋함은 너무도 지루할 것이다. 당연히 아이에겐 실망하는 경험도 필요하다.
넘어져보지 않으면 서서 걷는 일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갖는다는 것도 쉽지 않은 법이다. 비가 오는 날 소풍 계획인 깨어진 날 우리는 하늘을 원망하는 동시에 모든 것이 우리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을 깨달으며 다시 한 번
하늘을 바라보게 된다.
나는 애초 가을 야외예배를 준비하면서 올해 상반기에 있었던 두 성도의 투병을
지켜보고 사랑하는 교우들의 장례를 치른 우리 교회 성도들의 마음을 달래면서 다소 무거워진 교회의 분위기를 가을 하늘처럼 새롭게 하려고 의도했었다. 그런데 비가 온다니 하나님께 내심 서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곧 감사의 마음으로 바뀌게 되었다. 비가 올 경우의 수를 생각하면서 야외 예배 장소를 다시 물색하고 다시 준비하려고 하다 보니 뒤에서 함께 걱정하고 함께 준비하는 속장들과
선교회 임원들 등 비 오는 날을 함께 하며 해가 나는 날을 함께 준비하고 있는 우리의 이웃, 교우들,
동역자들의 존재와 그들의 헌신을 재발견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감사의 마음이 들었다.
18년 전 병석에 누워서야 가족과 친구들과 교우들의 사랑과 기도가 느껴지고 하나님께서 주신 하루의 삶이 감사하게 느껴졌던
것과 같은 경험이었다.
인생의 비 오는 날은 결코 실망의 날이 아니다. 오늘을 돌아보고 내일을 더 제대로 준비하게 해주고
함께 하는 가족과 함께 믿는 형제자매들의 존재를 바라볼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비 오는 날이 아니었다면
제대로 찾지도 부르지도 않았을 하나님 앞에 무릎 꿇게 되었으니 때론 인생의 어두운 날조차도 은혜의 날이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