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햇볕

 

20151025

 

가을 햇살이 따사롭다. 아침 저녁으로 제법 쌀쌀한 것 같아서 아침 교회에 나서면서 긴 팔 옷에 자켓까지 챙겨 입었는데, 곧 더워서 겉옷을 벗어 의자 위에 걸쳐놓게 되니 이 좋은 날씨에도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모양이 어색하기만 하다. 이 어색함은 아마도 언제나 자연의 섭리에 쉽게 순응하지 못하고 자기만의 영역을 만들어 자신만의 만족을 추구하는 인간의 이기성 때문이 아닐까 싶다.

구름 한 점 없는 가을 하늘을 바라보고 있자니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기 위해 벌인 해와 바람의 대결 이야기가 생각난다. 거센 바람이 나그네의 옷을 벗기려고 하자 더 옷을 추슬러 입지만, 햇볕이 점차 강해지자 나그네는 옷을 하나씩 벗을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인데, 그 이야기에 나오는 나그네는 겉옷을 벗든 벗지 않든 상관이 없는 사람인 반면 죄 가운데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인간의 실존은 헛된 세상의 겉옷은 반드시 벗어버려야 하는 존재라는 점이 다르다.

인간은 자신의 입맛에 따라 살기 위해 필요하지 않은 것들을 움켜쥐기도 하고 자신의 연약함을 숨기기 위해 위선의 가면과 가식으로 자신을 감싸는 게 일반이다. 우리 인간 스스로 그 헛된 위선과 거짓의 옷들을 벗어 던지면 좋겠지만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우리 스스로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게 문제다. 그러므로 나그네의 옷을 벗긴 햇볕처럼 하나님의 은혜의 햇볕이 필요한 것 같다.

다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 은혜의 햇살을 받을 수 있는 곳으로, 기도하는 자리, 예배하는 자리, 찬양의 자리로 나아가는 일일 것이다. 은혜의 햇볕을 거부하며 살아온 우리는 사람다움이랄까 아니면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할까, 참된 인간의 모습을 많이 잃어버렸다. 햇볕 없이 어둠 속에 살아가는 좀비처럼 바뀌어 버린 것이다. 이제 우리의 삶의 문제의 핵심은 일도, 사람도, 그 어떤 상황도 아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할 수 있는 자리에 지속적으로 나아갈 수 있느냐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