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을 믿으십니까?
2015년 11월 8일
며칠 전 수요저녁 찬양과 기도 모임 준비를
위해 마이크와 보면대 등을 챙기고 있던 중이었다. 수요일 저녁마다 채플의 영접실에서 성경공부를 하는 미국교회의 한 자매가 갑자기
나를 찾는다. 난 그 순간 많이 당황했다. 속으로 “올 것이 왔구나. 지난 몇 달간 몇차례 성경공부하는 동안 아이들을 조용히 시켜달라고 했었는데……”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예전에 우리교회 아이들이 교회의 값진 고가구들을 망가뜨리고 영접실의
벽을 부수어 놓은 일과 오래된 피아노의 건반을 뜯어놓았던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뇌리를 스쳤다.
그러나 자신의 이름이 데보라라고 밝힌 그
자매는 뜻밖의 이야기를 꺼냈다. 자신에게는 하나님께 받은 예언의 은사가 있는데 예언을 믿느냐고 자신과 잠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냐고 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어번교회에 대한 예언의 말씀을 주시면서 지금 채플 뒷방으로 가서 한인교회의 담임자인 나에게 그 예언의
말씀을 전하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자매가 물었다.
“예언을 믿으시나요?” 오순절 계통의
교회도 아니고 1850년대에 세워진 남부 플렌테이션들의 주인들이 다녔던 이 연합감리교회에서,
그것도 젊은 백인 여성이 예언에 대해 말을 꺼내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오히려 한인교회의
성도 중 하나가 자신이 받은 예언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 어울릴 것만 같았다. 지난 15년간 미국에서 목회하는 동안 예언의 은사를 사용하는 성도를 처음 만났다.
“예언을 믿느냐”는 질문은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일을 평생의 사명으로 알고 사는 나에겐 “네가 내 말을 믿느냐? 네가 내 말을 들을 준비가 되었느냐?”하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렸다. 사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이 질문은 보통 두 가지 전혀 다른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하나는 첨단 과학의 시대에 아직도 그런 믿기 힘든 하나님 얘기와 예언 같은 걸 믿고 사냐고 하는 질문이고,
둘째는 하나님께서 이루시겠다고 전해주신 말씀을 지금도 잘 믿고 있느냐고 묻는 질문이다.
하지만 이 질문의 본질은 바로 그 말의
시제와 주어였다.
그 자매의 질문은 바로 현재형이었다. 즉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지금 듣고 믿을 수 있느냐는 말인 것이다. 하나님께서 지금 하시는 말씀을 들을 준비가 되었느냐는 말이다.
성경의 곳곳에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예언의 말씀을 대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들의 성도됨, 그들의 믿음은 바로 하나님께서 직접 주신 말씀이나 예언자나 사사와 같은
사람들을 통해 주신 말씀을 그 말씀을 들은 당사자가 그 시점에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와 상관이 있었다. 그렇다.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신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하기에 과거에 하신
말씀도 시대를 관통하여 여전히 진리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과거에 하나님의 말씀, 예언의 말씀을 믿었다는 것이 현재적으로도 그렇다는 말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뿐만 아니라 성경의 인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언을 듣는 나(주어) 자신이 그 말씀을 믿느냐는 것이 중요하다. 성경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믿음이나 사도 바울의 믿음에 대해 이해하고 강조하는 일보다 오늘 이 시점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바로
나 자신이 믿고 그 대로 따를 수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같은 시대를 사는 한 젊은 백인 자매를 통해 하나님은
나에게 물으셨다. “네가 나를 믿느냐?” “네가 말씀 들을 준비가 되었느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예언은 전달된 하나님의 말씀일 뿐이다. 언제나 진리가 되시는 하나님의 말씀의 미래형의 선포일 뿐이다. 그 예언의 본질은 예언 자체보다
그 예언을 받는 성도의 현재가 중요하다. 그래야 그 말씀, 그 예언의
인도함을 받을 수 있고 그 말씀의 능력과 그 열매를 거둘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