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의 삶은 은혜의 샘물을 독에 채우는 것과 같다. 아구까지 채워진 은혜의 물은 우리 삶 속에서 향내를 뿜어내고 기쁨을 주는 포도주가 된다. 반면 은혜의 생수가 채워지지 않는다면 성도로서의 삶은 공허하고 피폐할 뿐 아니라 영적인 갈증이 그치지 않게 되어 우리의 삶을 황량한 광야의 생활로 바꾸어버릴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성도는 입을 크게 벌리고 하늘의 은혜를 바랄 뿐 아니라 부어주신 은혜를 가득 채워 간직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이 우리의 삶의 그릇 안에 은혜의 생수가 언제나 가득 차 있기는 힘들다. 그것은 성경의 위대한 인물들의 발자취를 돌아보아도 마찬가지이다. 아브라함이나 야곱도, 엘리야 선지자나 다윗도, 베드로나 바울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가득 차 있지 않은 것과 물독 자체가 깨져 있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가득 차 있지 않은 물독엔 물을 채우면 그만이지만 깨져서 구멍 난 물독은 물을 채우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어쩌면 우리의 갈급함은 은혜의 생수와 단비가 없어서 생긴 문제가 아닌지도 모른다. 하나님이 돌보아주지 않아서 고난의 때에 너무 힘들었다고 생각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 부분을 유념해 보아야 한다. 은혜의 단비가 내려도 모아서 담아둘 온전한 그릇이 없는 것은 아닌지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아야 한다는 말이다.


내 영혼이 깨져 구멍 난 물독과 같다면 어찌 해야 하겠는가? 그 때엔 물 타령할 때가 아닐 것이다. 은혜가 없다고 할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팔이 짧아서 우리의 손을 잡아주시지 못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깨진 독엔 물이 필요한 게 아니라 수리가 필요하다. 감염이 되어 병이 난 사람은 사람들이 옆에 와주지 않는다고 투덜대서는 안 되는 법이다. 왜 나에겐 중요한 일을 맡기지 않냐고 해서는 안 된다. 약을 먹든지 필요한 의료적 조치를 취해서 몸을 회복하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그러므로 구멍 난 물독 같은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면 하나님의 형상을 온전히 회복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 은혜가 새고 있는 구멍을 찾아서 자신의 깨어진 부분을 온전하게 만들어야 한다. 일단 온전하게 만들어지고 나면 은혜의 생수가 단지 한 방울이 떨어진다 하더라도 그 한 방울의 은혜는 온전히 자신의 것이 되고 하나님의 은혜는 스치는 옷깃의 기회만으로도 충분한 것이기에 언제 어디서나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