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하는 마음

 

강윤구목사

 



며칠 전 아이들의 리포트 카드에 싸인을 하려고 가방 속 포더를 열었다. 그리고 두 가지에 놀랐다. 우선, 다른 엄마 아빠만큼 챙겨주지도 도와주지도 못했는데 학교에서 스스로 너무 잘 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지금까지 한 번도 A학점을 놓치지 않고 당연한 듯 좋은 성적을 받아온 아이들을 보면서 너무 놀랍고 감사했다.

그리고 또 하나, 사빈이의 폴더 안에 클립되어 있는 한 장의 그림편지를 보고 놀랐다. 거기엔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와 함께 있는 사빈이의 그림이 있었고 맨 위에 할아버지한테라고 씌어있는 걸 보니 편지가 분명했다. 아래엔 사랑의 하트와 함께 사랑해요라는 문구가 있었다. 그리고 편지의 뒷장엔 울고 있는 사빈이의 모습이 있었다. 할아버지의 머리의 가운데 부분에 머리카락이 없는 것을 확인하니 뜻밖의 디테일한 사빈이의 표현력에 웃음도 났다.

처음엔 영어를 사용하는 학교에서 그린 그림 편지인데 한글이 등장해서 어린이문화학교에서 한 것이 잘못 들어갔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생각과 달리 학교에서 만든 것이란다. 그래서왜 학교에서 한글로 글씨를 썼니, 사빈아?”하고 물었는데 사빈의 답을 듣고 나니 눈물이 핑돈다. “할아버지는 영어 못하시니까…….”할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애틋한 사랑을 표현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이 아이는 그 편지의 대상인 할아버지가 읽을 수 있도록 한글로 쓰는 일이 더 중요했던 것이다.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나라는 사람은 참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가정과 교우들, 그리고 교회를 위해 일하고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내 스스로가 생각하는 사랑과 섬김은 남보다 나 자신을 더 배려하고 있었다.  

목회는 수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대화를 해야 하는 일이다 보니 상처 많은 성도들의 다소 심한 말을 듣거나 가슴을 후벼파는 듯한 말들을 때론 하루에도 수십 번 들어야 할 때도 있다. 헨리 나우엔이 쓴 책 제목처럼 상처받은 치유자(Wounded Healer)”로 사는 목회자이다 보니 언젠가부터인가 남에게 상처 받지 않고자 나 자신이 상처받지 않도록 자신을 배려하는 습관이 생겨난 것이다. 정작 내가 사랑해야 할 사람들을 배려하는 일에는 아직도 어리숙한데 내 자신을 배려하는데에 더 집중하고 있다니 하는 생각이 드니 아무도 날 쳐다보지 않고 있는 이 시점에서조차 내 자신이 참 많이 부끄럽다.

예수님은 어떠셨을까? 율법을 어기거나 악을 행한 사람이 수모를 당하게 하시지는 않았다. 예수님은 현장에서 간음하단 잡혀 벌벌떨며 두려워하는 현행범 여인을 정죄하지 않으셨다. 그 여인의 죄는 미워하시지만 그 여인의 영혼은 사랑하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당대 가장 지탄을 많이 받던 삭개오를 정죄하지 않으시고 용서하시고 그의 집에 머물러주셨다. 그렇다. 죄 많은 우리 인생의 한 영혼 한 여혼을 소중히 여기셨던 주님은 죄인들의 영혼을 불쌍히 여기셔서 그들을 배려하셨던 것이다.

우리 둘째의 진심어린 그림 편지를 통해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이들을 사랑과 돌봄으로 붙들어야 하는 목회자의 기본 자세를 다시 새롭게 하게 하신 주님의 은혜가 너무 크고 감사하다. 이제 배려할 줄 아는 사랑과 섬김의 훈련을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