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기다림은 기다리는 시간과 인내가 그 만큼의 값어치와 의미가 있는가 하면 어떤 기다림은 그 반대일 수도 있다. 이것을 세상 사람들은 그냥 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하지만 성도에게 있어서 그 기다림과 그로 인한 그 열매의 차이는 그냥 재수나 운명 같은 말로 설명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왜 그 열매의 의미와 가치가 다를까? 그것은 그 기다림이 어떤 기다림인가에 달려있다. 예컨대, 어떤 이가 손을 놓은 채 수고와 땀도 흘리지 않을 뿐 아니라 제대로 된 씨앗을 심지도 않는다면 그 사람의 기다림은 헛된 망상과 같아서 꿈 속에만 존재하고 실재하지 않는 신기루일 뿐이다. 성도에게 있어 이 기다림은 마치 주인에게 받은 한 달란트를 땅에 묻어둔 주인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기다림과도 같다. 주신 사명은 잊은 채 단순히 예배당만 꼬박꼬박 다니며 심판의 날만 학수고대하는 이름만 남은 성도의 기다림인 것이다.


반면 어떤 사람이 제대로 된 밭에 심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씨앗을 심고 때를 따라 할 수 있는 최선의 수고와 인내로 하는 기다림이라면 그 기다림은 의미와 가치와 기쁨을 모두 얻을 수 있는 기다림이다. 성도에게 있어서 이 기다림은 자신이 가진 가장 좋은 열매, 값진 달란트를 섬김과 사랑과 선교 등을 통해 심고 기다리는 일과 같아서 당장은 값진 열매를 모두 잃어버리거나 써버리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열매를 거둘 때가 이를 때까지 그 기다림의 시간 동안 인내하면서 기도와 수고를 그치지 않는다면 이 기다림은 인간의 인생에서 경험할 수 있는 가장 값진 기다림이 될 것이다.


지금 우리는 어떤 기다림 가운데 있을까? 오늘 성도라 자칭하는 나의 기다림, 구원의 방주라 불리는 교회의 기다림은 어떤 기다림일까? 적어도 심지도 않고 기다리는 기다림이거나 잘못된 것을 심고 기다리는 기다림이 되어서는 안 된다. 모름지기 성도의 기다림은 열매가 무르익기 위한 조건과 하나님의 때가 이르는 순간까지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과 사명을 살아내며 하는 기다림이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