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을 다하라

 

강윤구 목사

013116/칼럼

 

최선을 다하라.”이 말은 어쩌면 고국의 가족들이나 미주 한인을 막론하고 해당사항이 없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이미 최선을 다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 한인보다 더 열심히 일하는 민족을 보지 못했다. 한국교회의 성도들보다 더 열심을 다하는 성도들을 별로 보지 못했다. 즉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우리 한인들, 한인 성도의 이름표와도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최선이라고 생각하며 진을 뺐음에도 좋은 열매를 거두지 못하게 되면 그 허탈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최선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산다는 자부심이 오히려 그 피로감과 공허함에 가로막혀 절망과 우울에 빠지고 만다. 그리고 이 실망감과 피로감은 열심을 내던 성도들로 하여금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교회생활에서 스스로 물러나게 만들고 차선책을 찾게 만든다.

하지만 신앙생활엔 차선이 없다. 신앙생활의 차선은 불신앙내지는 이단적인 신앙일 뿐이다. 최선은 언제나 하나님과 연관되어 있다. 왜냐하면 세상에 존재하는 궁극의 선이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당면한 문제를 풀어낼 묘수를 찾아 헤매거나 고민할 필요도 없다. 하나님만이 유일한 답이시기 때문이다. 그분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분이시다. 즉 우리의 진짜 최선은 우리의 당연히 할 바를 행하면서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일, 즉 기도하는 일이다. 피조물인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께로 나아가기 전엔 완전한 답을 찾을 수 없다.

세상이 말하는 최선이란 아마 이쯤 될 것이다.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시간과 정성과 에너지를 다 쏟아 부어 자신이 할 수 있다 생각하는 모든 일을 도모하며 애쓰는 일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목적을 위해서 우리의 할 일을 다해도 우리 인간이 생각하는 최선은 하나님의 뜻과 합하지 않은 일일 경우가 많다. 그래서 우리의 최선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의 도우심 속에 그 뜻을 따라 믿음으로 행하는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생각하는 최선(실제로는 차선이거나 실수)을 다한 후 자신이 실패라고 생각하는 순간에 하나님 앞에 엎드려 본다. 하지만 올바른 신앙의 사람이라면 하나님 앞에 엎드려 그분의 뜻을 깨닫고자 애쓰는 법이다. 그분의 뜻을 비로서 알게 되거나 자신의 잘못을 깨닫게 될 경우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믿음으로 과감히 자신의 어리석은 죄인의 생활로부터 하나님께로 방향을 돌릴 줄 아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관점에서의 최선은 시종일관 하나님 앞에 무릎 꿇는 기도 생활을 인생의 중심에 두는 일이다. 우리는 신이 아니기에 노력하고 힘을 쓰면서 실수도 하고 넘어지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일을 놓쳐서는 안 된다. 그것이 완전하지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완전한 일, 최선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