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이별은 그 만남을 값지게 한다. 헤어짐 속에서도 감사라는 글자를 우리의 가슴에 새겨준다. 이별 후 만남을 생각하면서 그 만남을 통해 경험한 사랑을 추억하게 한다. 그렇게 만남과 이별은 인간의 삶을 구성하는 씨실과 날실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수많은 만남과 헤어짐이라는 실들이 꿰어지고 엮이며 생긴 삶의 무늬가 곧 우리의 현 모습이요 정체성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성도는 하나님께서 주신 만남과 이별 모두를 값지게 여겨야 한다. 하나님께서 주신 만남은 즐겁고 행복한 만남이든 가슴 저미는 만남이든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의 한 단면이라는 측면서 그렇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자신의 선호하는 만남을 찾기 마련이고 그들에게 헤어짐은 그저 아픔이거나 더 이상의 의미가 없는 만남의 끝일 뿐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주신 만남들의 일부는 자기자신의 만족을 위해 아예 폐기시켜 버린다.
그렇다면 성도에게 있어서 만남은 무엇이고 이별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사건의 시작이 만남이라면 하나님의 은혜의 깊이와 열매를 영원히 간직하게 해주는 사건은 이별이라고 할 수 있다. 성도에게 있어서 가장 값지고 복 된 창조주이며 구원자이신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통해 이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리스도로 오신 예수님은 우리의 초청과 오랜 준비 속에 우리에게 오신 것이 아니라 당신의 계획과 섭리 속에 오셨다. 하나님의 강권적이고 일방적인 은혜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님과의 만남은 유한한 인간이 영원한 하나님의 은혜의 옷자락을 만질 수 있도록 해주신 하나님과의 만남이다. 그리고 그 만남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아름다운 이별을 통해 그 만남의 가치를 더 추억하고 되새기게 만든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부활의 증인들, 즉 성도들을 떠나시며 인간의 삶을 바꾸는 결정적인 것들을 주셨다. 죄에 대한 용서, 사망 권세를 이기는 능력,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이 그것이다. 죄를 용서해 주심으로써 죄 아래 살지 않고 은혜 아래 거하게 해주신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고 대신 죽으심으로써 우리에겐 영원한 생명을 주셨다.
그러므로 성도인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아름다운 이별을 배워야 한다. 그 말인즉슨 이웃과의 만남 속에서 먼저 십자가를 지고 사랑으로 섬겨야 한다는 말이다. 그 만남의 끝낼 때 우리와 만난 모든 이들에게 그리스도의 생명을 주어야 한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들이 예수 그리스도와의 아름다운 만남과 이별 속에 우리가 얻은 것들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