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는 매우 복잡한 일들과 만남들로 엮여 있다.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중요한 소통의 계기 중에는 설득과 감동이 있는데 목회는 설득보다는 감동이 있어야 목회다워지는 것 같다. 설득은 논리를 통해 이성에 호소하는 소통의 방법을 말하는 것이고 감동은 마음을 사로잡아 그 사람을 움직이는 소통의 방법을 뜻한다.


논리로 설득해서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이성(reason)에 호소하는 방법이고 사회가 돌아가는 주된 방식이다. 그런데 문제는 세상엔 수 많은 논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수많은 일리(一理)들을 근거로 설득하고 설득 당하는 동시에 또 다른 논리에 귀를 기울이는 복잡한 구조 속에 사회가 돌아가는 것이다. 설득하고 설득당하는 일은 현대인에게 매우 익숙한 일인 셈이다.


하지만 자칫 잘못하면 목회자나 평신도 사역자들은 저마다 논리를 도구삼아 설득의 일에 집중하기 쉽다. 그래서 성도를 만나 설득하면 항상 실패를 경험한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겐 하나님을 믿고 남을 사랑할 이유보다 그렇게 하고 싶지 않게 만드는 더 많은 이유와 논리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히려 일리가 아닌 진리의 영역엔 설득이 필요하지 않다. 진리를 경험하는 일은 하나님의 거룩한 영역에 들어가는 일이기 때문에 설득이 아니라 체험이 필요하다. 그리고 거기엔 감동이 있는 법이다.


하나님이 사랑이시며 그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당신의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셔서 십자가를 지게 하셨다는 것은 하나의 사실이나 역사의 영역이 아니라 진리의 영역에 속한 것이다. 진리의 메시지는 우리를 설득하는 논리가 아니라 피조물을 향한 창조주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감동을 주는 것이다.


신앙 생활뿐 아니라 사랑하며 살아가는 인생의 진솔한 삶의 현장엔 설득보다는 감동이 필요하다. 어쩌면 우리는 우리의 이해관계를 위해 수많은 일리의 논리들과 씨름하며 머리 아파하는 지도 모른다. 그래서 수많은 논리보다 하나의 감동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이 시대를 위한 믿는 자의 사명은 무엇일까? 감동이 없는 이 시대, 논리만 판을 치는 이 시대를 위해 하나님은 사랑의 감동으로 헌신하는 일꾼으로 부르셨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