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입니까?
032716 강윤구목사 칼럼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Extra ecclesiam nulla salus).”이 명제는 교황 보나파시우스 8세가 1302년 “Una Sanctum”이라는 칙서를 발표하면서 한 말이다. 사실 당시 교황이 이 말을 했던 이유는 매우 정치적인 의도에서 출발한 것이지만 그 칙서의 반포 이후 이 명제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과 교회 밖에 있는 사람을 구별하거나 차별하고 아군과 적군을 구별할 때라든가 이단과 싸우는 기본 명제로 사용되었다. 물론 이 때 거론되는 교회라는 단어는 다분히 제도적 개념이다.
당시 보나파시우스 8세는 교황이 곧 교회라고 여겼다. 즉 교황의 말에 순종하는 곳, 그런 방식으로 움직여지는 체제를 가지고 있는 곳만 교회로 여겼다는 말이다. 즉 교황의 권위와 치리에 순종하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당시의 교회라는 제도만을 교회로 여긴 것이다. 하지만 원래 예수님께서 ‘교회(Ecclesia)’라고 하셨을 때 의미하신 교회는 제도나 건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물론 “교회 밖에 구원이 없다”라고 하거나 아니면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다”하면서 논쟁하는 일이 가진 신학적 논쟁의 순기능을 부인할 순 없다. 그러나 분명 그렇게 말할 때에 우리가 ‘교회’라는 말을 사용하며 의도하는 바가 예수님께서 ‘교회’라는 말을 하실 때 의도하신 바와 거리가 멀다는 것은 확실하다.
이 논쟁은 수많은 이단 논쟁 속에서 교회로 하여금 스스로 흑백 논리에 빠지게 하였고 그 결과 교회는 제도적으로 더 굳건해진 반면, 자신을 주님의 몸으로 이해할 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통해 구원받았음을 고백하고 그리스도를 본받아 주님의 말씀에 따라 순종하는 사람으로, 주님께 속한 구원받은 성도로서 자신을 이해하는 일은 사라져가고 있다.
그 결과 오늘날 성도들이 교회를 이야기할 때면 감리교회, 장로교회, 침례교회와 같은 교권과 교회라는 제도로 이해하거나 예배를 드리는 장소나 건물 개념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건 안 믿건 사람들이 좋다고들 말하는 교회나 교단에 속하여 예배에 참석하고 있느냐 아니냐 하는 일에 따라 구원을 이해하게 되었다. 이런 생각이야 말로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예컨대, 교회 안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십자가의 능력을 믿지 않고 그저 교회만 오고 가는 사람들이 다수를 차지하지만 정작 그들은 각각 자신을 교회 안에 있는 구원을 보장 받은 구원의 특권층으로 여기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들에게선 행함 있는 믿음을 찾기 어렵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고 자기 스스로도 자신의 십자가를 지려는 제자도를 발견하는 일도 어렵다.
만일 예수님께서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고 하셨다면 그 말씀은 참으로 맞는 말이지만 사람들이 말하는 제도적 교회 안에만 구원이 있다는 주장은 그저 어리석은 말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 제도적 교회 안에 주님의 몸이라고 할 수 없는 위선적인 종교인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경축하는 부활절을 맞아 우리는 내 자신이 주님의 몸된 참 교회의 지체인가를 물어야 할 것이다. “주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성도인 나는 정말 교회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