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후 3시에 대학미식축구 시즌이 시작되었다. 지난 전미대학 미식축구 챔피언십 경기에서 어번 대학이 플로리다 주립대학을 맞아 보여주었던 경기 장면은 아직도 그 감동이 영화처럼 생생하다. 어번대학 미식축구팀의 경기 중 가장 빅 게임이라고 불리는 알라바마 대학과의 경기는 이루 말할 것도 없다.
사실 그 두 경기는 박빙의 승부로 엎치락뒤치락 했기 때문에 선수들로서는 아쉽거나 불만이 있었던 심판의 판정도 많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지난 경기들이 감동적이었던 명승부였던 이유는 심판의 판정에 순응했기 때문이다. 이 경기들에서 선수들은 모두 최선을 다했고 정성을 다했다. 그리고 모든 판정은 심판에게 완전히 맡겼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경기는 선수들이 하지만 심판의 판정과 심판의 판정에 대한 선수들의 동의는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몇 년 전 한국의 프로축구선수들은 승부를 조작하려 했고 이 일은 축구계와 한국 사회가 비리와 거짓이라는 모래 위에 세워진 것처럼 위태해 보였다. 축구 선수는 주어진 경기 규칙에 따라 승부에 열중해야 한다. 본인이 판정하고 본인이 남의 잘잘못을 따지려 들면 승부 자체의 의미가 상실되고 만다. 내가 만들어낸 거짓 면류관을 쓰고 기뻐해 봐야 그 거짓이라는 재료로 만든 왕관은 곧 썩어버릴 잠깐
만일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하나님께서 주신 영적 승부로 비유해 볼 수 있다면, 성도들은 선수들에 해당하고 하나님은 우리가 참여하는 경기의 심판이다. 그리고 여기서 역할보다 중요한 것은 규칙에 순종하는 일이다. 우리의 삶에서 승부를 위한 끝없는 노력과 수고보다 더 중요한 건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그리고 그분의 심판에 대해 순종하는 일이다. 우리가 다른 성도를 심판하고 우리가 우리 인생의 경기를 조작하려 드는 것은 하나님의 일에 대한 도전일 뿐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깨고 하나님의 자리에 섬으로써 자신을 우상으로 만드는 최악의 실수를 저지르게 된다.
성도는 심판이 아니다. 심판의 날도 정할 수 없고 이웃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에도 간섭할 수 없다. 성도는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믿음에 근거하여 그 길을 갈 뿐이다. 하나님께 맡기고 가는 일이야말로 성도가 할 수 있는 가장 복된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