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의 밭에서 캐내는 보화
042416/ 강윤구 목사칼럼
고난은 마치 뜻밖의 상황에 아버지께로부터 물려받은 농지와 같다. 아마도 밭일도 할 줄 모르는 아들이 바라본 그 밭은 의미도 가치를 쉽게 가늠할 수 없는 애물단지에 가까울 것이다. 준비 없이 맞닥뜨린 그 밭은 엄청난 수고와 땀을 필요로 할 뿐 아니라, 그
밭을 가지고 무엇인가를 해보려 하는 사람에겐 낮아지기를 강요한다. 밭일은 허리를 숙여야 하고 고개를
숙여야 하고 땀을 흘려야 할 뿐이다. 게다가 아무리 수고해도 열매는 멀고 인내의 길은 멀 뿐이니 맘의
고충이 말이 아닌 것이다.
인생에서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고난은 그렇게 쉽게 어찌 할 수 없는 무엇인 것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그 고난으로부터 도망가려고 한다. 특히 짧은
시간에 이루어진 한국 사회의 근대화는 고난을 강요 받은 부모세대를 통해 고난에 대한 트라우마만을 남기고 말았다.
고난을 맨몸으로 참아낸 부모와 조부모 세대는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고난 없는 삶, 수고 없는
영광을 꿈꾸게 했고, 최근 한국과 재외한인들은 그렇게 살아온 인생의 열매를 거두는 중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고난을 피하려던 수고는 헛수고였고 그렇게 해서 얻은 물질만능주의와
무한이기주의의 결과는 오히려 우리에게서 삶의 의미와 행복이라는 소중한 열매를 빼앗아 버렸다. 마치 성경에
나오는 잎사귀만 무성하고 열매는 내지 못하던 감람나무와도 같다. 기대가 컸기에 우리의 실망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능력이 있고, 지식이 있고, 명예가 있고 물질이 있으면 다 해결될 것 같았지만 그 신기루는 아무리 움켜쥐어도 얻을 수 있는 것이 없다. 그저 공허할 뿐이다.
그럼 이제 성경을 보자. 성경에 나오는
모든 위대한 인물들은 하나같이 고난의 밭에서 보화를 캐낸 사람들이다. 즉 고난 없이 살았던 인생들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아브라함, 야곱, 요셉, 다윗, 엘리아, 베드로, 바울… 그들을
바라보면 우리가 만난 고난이라는 것에는 반드시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이 그 고난의
의미를 깨달은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고난은 그 고난의 의미를 깨닫는 사람에게 보화를 제공하는
밭이기 때문이다.
고난은 때론 우리의 행함의 결과기 때문에 고난을 잘 곱씹으면 자신의 약점과 죄과를
깨달아 진정한 새사람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고난은 때론 연약한 우리가 훈련하고 연단 받아
더 성숙하고 유능한 사람이 되게 해준다. 고난은 때론 눈으로만 보며 살던 우리에게 영안을 열고 삶의
의미와 영적인 세계의 깊이를 볼 수 있는 기회와 공간을 허락한다. 고난은 가짜와 진짜를 구별할 수 있게
해주고, 분주한 삶의 짧은 호흡에서 벗어나 기도와 묵상을 통해 삶을 반성하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해준다.
그래서 고난은 우리가 지고 가야 할 십자가임에 분명하다. 겉으로 보기엔 우리를 죽이는 사형 틀이지만 그 본질은 우리를 거듭나게 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영광을 누리게 해줄
축복의 통로인 것이다. “고난을 당할 때 부끄러워하지 말고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사도 바울의 충고는 고난과 씨름하는 우리의 오늘에 필요한 말임을 명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