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마음을 가장 힘들게 하고 실수하게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두려움이다. 두려움 자체는 인간 스스로 통제 할 수 없는 감정이지만 언제나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는 사람은 믿음으로 이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두려움이 우리의 삶을 사로잡게 내버려두면 그 두려움은 우리의 이성과 신앙을 혼미하게 만들어 넘어뜨리는 사탄의 도구가 된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 범죄하게 된 계기가 인간의 욕심과 교만이라면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 뒤 인간 곁을 언제나 지키며 그 죄의 길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두려움이다. 하나님 없이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살아가려고 했음에도 그렇게 죄 가운데 살아가는 자신이 안전하지 않음을 본능적으로 아는 것이다. 그러나 그 두려움 앞에서 전능하신 창조자시고 은혜로운 구원자 하나님을 의지하여 나아가지 않고, 회개의 길을 택하지 못한 채 이성의 계산을 믿어 사람의 대책에 기대기 시작하면 그 두려움은 현실이 되고 만다.


소돔과 고모라 성의 멸망 당시 목숨을 건졌던 롯과 두 딸의 경우가 그랬다. 자신들이 살던 삶의 터전이 유황불에 멸망하는 모습을 뒤로하고 구원함을 받았지만 롯이나 두 딸이나 두려워하기는 매한가지였다. 롯은 소돔에서 도망 나와 몸을 피했던 소알 땅에 사는 것도 두려워서 산으로 도망갔고, 두 딸은 자손이 끊기는 것을 두려워하여 천륜과 도덕을 깨고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고 취하게 한 후 잠자리를 가져서 각각 모압과 암몬의 조상이 되는 아들을 임신하여 출산하게 된다.


두려움 앞에서 나름대로 미래를 위해 택한 방법들이었건만 두려움 때문에 그들이 택한 인간적인 방법들은 훗날 그들과 그들의 자손을 축복의 길에서 멀어지게 만드는 기회가 되고 말았다. 두려움을 피하려다 넘어진 셈인데, 이쯤 되면 우리가 믿음 없이 두려워하는 일이 사탄이 만들어 놓은 올무에 걸리는 일과 다름이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두려움 자체가 문제가 아닌 것이다. 두려움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고 세상의 이런저런 방법들을 생명줄로 의지하는 일이 문제인 것이다. 오히려 그 두려움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더 강하게 붙들게 된다면 두려움의 그 어두운 그늘에서 벗어나 주님의 은혜가 펼쳐진 양지로 나아가는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두려울 때 긴장해야 한다. 하나님의 언약을 믿고 말씀의 반석 위에 담대하게 설 수 있도록 애써야 한다. 하나님은 믿음의 길을 택한 이들에게 힘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