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엔 동남부지방 목회자들의 선교지 방문으로 인해 애리조나와 네바다의 사막을 온종일 달렸다. 그리고 특별한 경험을 했다. 미국 땅에선 하늘이 크게 보인다고들 말하지만 이렇게 지평선과 맞닿은 하늘을 쳐다보자니 내가 알던 하늘이 하늘의 전부가 아니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도심의 건물들에 막혀 보지 못하던 땅과 하늘을 보는 일은 그저 아무렇지도 않은 작은 일에 불과했지만 하늘과 땅의 전체 모습을 보는 경험은 특별할 수밖에 없었다. 장애물들이 전혀 없는 사막에서 바라보니 사방 어디를 보아도 하늘과 땅이 맞닿아 있었다. 하늘은 땅을 쳐다보지 않는 한 어느 방향을 보아도 바라볼 수 있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 동안 보지 못했던 것은 하늘과 땅이라기보다 그 하늘과 땅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게 막고 있었던 건물들이라는 점이다. 사람들이 필요해서 만들어 놓은 이 인공구조물들은 내가 항상 보던 것들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쉽게 바라보지 못했던 것들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래서 내 삶에 편이를 제공하던 그 건물들은 한편으론 장애물이기도 했다.
하지만 심지어 하나님의 동행하심과 기적을 날마다 경험하던 출애굽한200만의 이스라엘 백성들도 마치 하나님의 은혜를 전혀 경험한 적이 없는 사람들처럼 행동했던 것을 생각해 보면, 만나나 불기둥과 구름기둥 등 무엇인가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의 체험이 존재한다고 해서 우리의 신앙생활에 장애물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광야 한가운데서 먹이시고 입히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과 함께 하면서도 이스라엘은 불평하고 우상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동행하심과 은혜는 하나님의 여러 가지 계시 속에 이미 존재해왔다. 다만 장애물만 바라보다 그 장애물에 익숙해진 우리가 그 은혜를 도대체 볼 수가 없다고 경험할 수가 없다고들 난리인 것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할 수 있는 시야를 확보하는 일이야말로 신앙생활의 전환점이라고 할 수 있다. 시야를 확보하려면 때로는 물리적인 장애물을 제거해야 하고, 때로는 마음의 장애물을 제거해야 한다. 그리고 지금은“하나님은 왜?”라는 질문을 하기에 앞서서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는 내가 만들어 놓은 것들, 지금 집착하고 있는 일들, 나의 마음을 쏟아 붓고 있는 것들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의 장애물이 아닌지 생각해보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