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을 보는 눈

 

061216/칼럼

 

한 인간이 성장하는 일은 한 인간의 시야가 넓어지는 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시야가 넓어진다는 것은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이 무엇인지 인식하게 된다는 뜻이고, 그 땅에 혼자 사는 게 아니라 이웃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어울려 사는 삶까지 보게 됨을 말한다. 그래서 성장엔 항상 시야의 확장이 전제된다. 아이가 어른이 되려면 나와 분리되어 있는 다른 사람을 인식해야만 하는 것처럼 참된 신앙인으로 성장하려면 하나님의 은혜를 향한 자신의 욕구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은혜가 필요한 사람들의 모습도 보여야 한다.


그러나 자기계발과 성장에 목숨을 거는 이 시대의 사람들, 이 시대의 신앙인들의 눈길은 오직 자신과 자신과 관련된 곳에만 머무르고 있다. 지적으로나 영적으로나 성장한 것 같고 많이 배운 것 같은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은 너무 유아기적 삶에 머물러 있다. 이기적인 시야만 가지고 살기 때문이다.  


반면 남을 볼 수 있는 시야를 가진 사람은 당연히 자기 자신도 더 분명하게 볼 수 있는 법이다. 키가 크다고 생각하던 사람은 자신보다 더 큰 사람을 볼 수 있을 때 자신을 보다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 자신을 똑바로 보는 일은 이웃을 제대로 볼 수 있느냐의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남을 볼 수 있는 사람이 자신을 객관화 할 수 있기 때문에 곧 남을 볼 줄 아는 사람이 자신을 볼 수 있다는 말이 성립하는 것이다.


그러나 슬프게도 오늘날 기독교회는 이웃을 보는 눈을 아직 갖지 못한 것 같다. 장님들의 공동체가 되어가고 있다. 목회자들과 평신도 리더들은 세상보다 더 타락해 가고, 이미 이익집단이 되어버린 교회는 무식과 몰상식의 옷을 입은 위선자들의 모임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미 세상은 알아버렸다. 진리와 구원으로 이웃들을 인도해 주겠다던 자칭 교인들이 실제로는 자기자신도 이웃도 올바로 보지 못하는 장님에 불과했다는 걸 말이다. 성경은 읽고 살지만 예수님의 말씀의 참 뜻을 전혀 알지 못하는 말 그대로 들을 귀 없는사람들에 불과하다는 걸 말이다.


이제 교회가 세상을 향해 소돔과 고모라로부터 나오라고 말할 때가 아니다. 이젠 교회를 소돔과 고모라로 만든 우리 스스로 재를 뒤집어 쓰고 회개할 때다. 나의 성장과 내가 입을 은혜와 구원을 말할 때가 아니다. 주님의 은혜와 긍휼을 알지 못하는 이웃을 바라 보아야 할 때다. 우리는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랑의 명령이 결국 우리의 이웃을 향하게 하셨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죄인을 보면 같은 죄인인 나 자신을 인식할 때이고 나의 배고픔과 갈증을 보면 같은 고통 속에 있는 이웃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이웃을 보는 눈이 있어야 사랑할 수 있기 때문인 까닭이 여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