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가장 기뻐하셨던 일은 사람들에게서 믿음이 있는 것을 보시는 일이다. 사람들이 그렇게 좋아하고 원했던 기적의 사건들이 일어났던 현장에선 언제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었다. 누가복음 18장 8절을 보면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는 의미심장한 말씀도 하셨다. 어쩌면 우리가 주님 앞에서 드릴 수 있는 가장 갚진 것이 있다면 그것은 믿음일 것이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던 당시에 얼마나 믿음 있는 사람을 보기가 힘드셨으면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고 하셨을까? 그런데 한편 하나님께서 택하신 아브라함의 자손들에게서 믿음을 발견하기 힘드셨던 것보다 오늘을 살아가는 수많은 기독교인들에게서 믿음을 보시는 것이 더 힘든 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예수님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에게서 참된 신앙의 모습을 발견하기 어려웠다지만 오늘의 교회 리더들과 목사들에게서 참된 믿음을 보는 것은 더더욱 어려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말씀을 되새겨 보면, 나와 우리 교회 그리고 넓게는 하나님을 섬긴다고 고백하는 공동체인 이 땅의 모든 교회를 바라보는 일이 매우 두렵다. 하지만 두려워하는 것만으로는 어떤 열매도 맺을 수 없다. 그러므로 교회는 그리고 성도는 믿음이라는 열매를 맺기 위해 해야만 하는 일을 해야 한다. 열매 맺는 꿈을 꾸고 열매를 거두기 위해 뿌릴 씨앗을 모아놓는 일만으로는 부족하다.
씨를 심기 위해 땀 흘려 땅을 개간하고 심는 한 사람이 필요하다. 언제 어떻게 심을지를 놓고 회의만 하고 계획만해서는 거둘 열매가 없다. 시간이 부족하고 능력도 부족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믿음으로 나아갈 한 명의 사람이다. 그렇다. 바로 헌신자가 필요한 것이다. 인력시장에 모여 있는 일꾼이 많이 있다고 해도 일터에서 일하는 게 아니라면 다 의미 없는 일이다. 애초부터 예수님께서 하신 믿음의 질문은 믿음 있는 사람을 볼 수 있을지 없을지를 묻는 질문이 아니라 말씀을 듣는 사람의 신앙적 결단과 헌신을 향한 예수님의 권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의 믿음이 필요할 때다. 함께 우리 안에 있는 양이 적더라도 오히려 내 자신이 많은 젖을 내는 양이 되겠다고 다짐해 본다. 한 사람이 썩어져 열매를 많이 맺으면 지금의 두려움과 걱정도 사라지리라.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을 막을 수 있는 믿음의 의인 열명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엎드리며 수고하는 사역의 동지들에게 주님의 은혜와 긍휼이 충만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