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3016/칼럼
행복은 어디서 오는가?
이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든 이런 질문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든, 사람이라면 이 질문과
상관 없이 살 수 없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해지길 원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사람은 행복을 위해 공부하고, 행복을 위해
일하고, 행복을 위해 인내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사람들의 마음 속 바람은 대부분 일치한다고 말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다만 사람들이
행복에 대해 서로 다른 가치판단의 기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일 것이다.
그런데 자본주의의 문화가 익숙한 현대인들이 행복을 위한 필요충분조건이라 믿고 있는 조건들 중 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미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조건이 있다. 그것은 풍요와 물질의 잉여가 삶을 행복하게 만든다는 생각이다. 어떤 면에서 보면 그렇게 믿는
현대인들의 생각은 신앙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신념은 어떤 상황에서도 잘 흔들리지 않는다.
육체적인 피곤함이나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견뎌가며 경제생활에 메어 달리는 이유는 그렇게 해서 얻게 되는 경제적
풍요로움이나 필요를 넘어서는 잉여의 자원들이 자신의 삶에 기쁨과 행복을 가져올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믿음은 일종의 신화일 뿐이다. 그렇게 믿고 살 땐 소망이 넘치고 힘이 나는 듯하지만 막상 그 신화의 뚜껑을 열어보면 그 안엔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신화가 근거 없이 생긴 것은 아닐 것이다. 경제적 빈곤 속에 경험한 어려움이라는 작은 경험들은 많은 것을 소유하면 반대로 더 행복할 것이라는 잘못된 기대를 만들어 버리고 이것을
합리적인 기대로 믿게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러나 성공(success)은 결코 잉여의 것들(excess)을 소유하는 것과 동의어가 아니다. 과한 소유가 삶에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 주지도 않는다. 현대인의 삶은 오히려 풍요와 잉여라는
어두운 그늘 속에 갇혀 있다.
성경을 보면 지혜의 말씀들을 모아놓은 잠언서(잠17:1)에 이런 말씀이 있다.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제육이 집에 가득하고도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A dry
crust eaten in peace is better than a great feast with strife).”즉
풍요가 우리에게 행복의 보증이 되지도 삶에서 얻는 기쁨의 해답도 아니라는 말이다. 오히려 우리 안에 평화와
평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대의 풍요는 인류 역사의 어느 시대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우리의 필요를 넘어섰다. 하지만 그 풍요가 우리에게 결코 기쁨을 주지 않는다. 배고프던 어린 시절보다 풍요로운 지금이 더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풍요는
우리에게 가끔 유익이 될 수는 있지만 행복의 전제조건은 아니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14장 27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는“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라고 하셨다.
즉 그런 평안이라는 것은 세상에서 우리의 노력과 수고의 대가로 얻게 되는 잉여의 것들이나 물질적 풍요를 통해 얻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 하늘로부터 오는 것이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단적으로 말해, 행복은 주님이 주시는 평안을 누리는 자들이 얻게 되는 것임을 명심하고
더 이상 풍요의 신화에 사로잡히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