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겟세마네에서 그리고 십자가 위에서 흘리셨을 눈물은 어떤 눈물이었을까? 양들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는 목자 예수님의 눈물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구원의 능력을 믿는 성도가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사람은 눈물의 의미를 깨달아가면서 성장하기 때문이다. 요사이 깨닫게 되는 목자 예수님의 눈물의 의미는 양을 향한 한 없는 사랑이다.


과거 아버지 어머니가 흘리셨던 눈물은 단순히 겉으로 보이는 경제적 상황이나 가정적 문제 때문만이 아니라는 건 성인이 되어 철이든 사람들이라면 모두 알 수 있다. 지금 생각해보니 과거 성도도 없이 지원도 뿌리치시고 개척하셨을 적 경제적 어려움 속에 흘렸던 아버지의 눈물은 단지 먹고 살기 힘들어서가 아니었다. 사랑하는 자녀가 잘 먹으며 크는 모습을 보지 못하는 것이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더 힘든 성도의 가정을 지켜보는 것이 힘들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눈물 없이 살 수 없다. 그래서일까? 내 기억 속의 아버지는 눈물이 많았다. 특히 성도들의 삶을 위해 기도하실 때 그랬다. 하반신 불수의 남편과 심장병으로 입술이 새파랗게 질려 있는 아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온종일 일하고 또 일한 피곤한 몸으로도 새벽마다 눈물로 기도하는 여 집사님을 지켜보던 아버지의 눈은 눈물로 탱탱 불어있을 때가 많았다. 지금은 사모님이 되었지만 가정을 챙기지 않고 장사하러 전국을 돌던 부모님 때문에 일주일 중 며칠은 라면으로 연명해야 했던 너무 예쁜 유치부 꼬마가 있었다. 그 아이는 먹을 것도 도움의 손길도 없는 반 지하 단칸방에서 두려운 밤이 무서워 두 살 위 언니와 꼭 껴안고 밤을 지새워야 할 때가 많았는데 이 상황을 걱정하시던 아버지는 자주 눈물을 흘리셨다. 아마도 사랑해야 하는 사람이 많은 목사였기에 더 그랬을 것이다.


하물며 목자 없는 양처럼 헤매다 물에 빠져 떠내려가고 생명을 노리는 이리와 곰의 발에 채여 끌려가는 양들을 바라보는 목자 예수님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영혼을 살리기 위해 죽음으로 구원의 길을 놓아주셨음에도 그 길로 가지 않고 죽음의 길로 내달리다 넘어지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라보시던 마음은 어땠을까? 심지어 예수님을 부인하며 외면하던 제자들을 바라보던 예수님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눈물은 고난과 못박힘의 고통으로 인한 눈물이 아니다. 양들을 사랑하기에 흘리는 목자의 눈물이다. 잃어버린 양들, 쓰러진 양들을 바라보는 목자의 눈물은 세상에 속한 눈물이 아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결정체이다.


이젠 목회하는 연월이 길어지면서 점차 눈물이 많아지는 걸 느낀다. 아버지의 눈물의 의미를 이제야 깨달은 것 같아 속상해서 울게 되고 목회 자체의 부담감과 스트레스에 집중하다 예수님의 눈물을 육신의 고통이나 제자들에 대한 배신감으로 인한 것이라 치부했던 어리석은 생각들이 부끄럽고 속상해서 눈물이 나기도 한다. 그리고 요즘은 상처가 나서 신음하는 양들이나 우리를 박차고 나가 방황하는 양들을 지켜보며 양들을 잘 지켜내지 못한 죄책감에 눈물이 나곤 하는데, 참 목자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과 눈물이 헛되지 아니하도록 더욱 힘써보리라 다짐해 보며 거룩한 주일을 기다리는 마음에 가슴이 먹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