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경주 다시 보기
082016/칼럼
무더운 브라질의 여러 경기장에선 지금도 각국에서 온 수많은 선수들이 뛰고 있다. 그렇다면 왜 그들은 그렇게 열심히 뛰고 있을까? 물론 표면적인 이유는 2016년 리우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기 위해서다. 하지만 100미터를 9초대에 달리는 우사인 볼트가 뛰는
목적은 아직 10초대를 뛰는 선수들과 같지 않다. 나라를 잃어 난민이
되어 경기에 참여한 선수들은 분명 미국이나 중국 또는 한국 선수들과는 또 다른 이유와 목적을 가지고 뛴다.
오늘 금메달을 딴 선수는 어쩌면 4년 전 경기에선 그저 예선 참가에 의미를 두었던 사람이었을 수도 있다. 다만 그 4년 전 그 경기에서 오늘을 향한 꿈을 꾸었을 것이다. 선수생활의 노년을 맞은 사람에겐 꼴찌로 끝날지 모르는 오늘의 경기와 그 순간들이 너무 소중했을 것이다. 평생의 달음박질을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거룩한 시간이 아닌가? 그렇다면 믿음의 경주는 어떨까?
마찬가지로 인생의 경주나 또는 성도가 참여하는 믿음의 경주에 뛰어든 사람들은 같은 도상에서 함께 뛴다 하지만 저마다 다른
목적을 가지고 뛰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앞으로 경험하게 될 사건과 얻게 될 영광도 당연 다를 것이다.
성도는 영적인 의미에서 볼 때 사도 바울이 자신의 삶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바와 같이 십자가 푯대를
향한 믿음의 경주에 참여한 사람과 같다. 물론
성도 한 명 한 명은 같은 길을 가면서도 다른 지점을 달리고 있을 뿐 아니라 서로가 다른 신체적, 영적,
심리적 컨디션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리고 여기엔 두 가지 중요한 공통점이
존재한다. 하나는 현 시점의 속도나 통과 지점과는 상관 없이 모든 성도는 주님이 제정하신 경기장에서 바로
지금 현재 뛰고 있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주님께서 앞서 가신 십자가 푯대를 향해 뛰어
각각 생명의 면류관을 얻고자 한다는 점이다.
여기서 모든 성도가 유념해야 할 것이 몇 가지 있다. 우선 우리는 서로 경쟁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만약 다른 사람보다 앞서 뛰어야 하는 경기라면 모르겠지만 성도는 함께 뛰는 동시에 혼자만의 경기를 하고 있을 뿐이다.
즉 넘어서고 이겨내야 하는 장애물은 있을 수 있어도 경쟁해야 하는 대상은 없다. 둘째로 세상의 경쟁과 달리 성도의 경주는 지켜보는 사람들에 의해 평가 받지 않는다는 점이다. 더 감사한 것은 우리의 심판자가 되시는 하나님은 이 세상 그 어떤 존재보다 더, 심지어 나
자신보다 더 나를 사랑해주시는 분이라는 점이다.
성도는 이미 믿음의 경주를 시작한 사람이다. 잠시 쉬고 있든 그 길에서 벗어나 있든 그 경주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경주는 내가 마쳐야 끝나는 경주이기 때문이다. 심신이 지쳐 더 경주 할 수 없다고
느끼는가? 그렇다면 은혜와 긍휼로 이 경주를 앞서서 먼저 마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자. 그리고 지금의 지친 나를 보듬고 인도하시기 위해 보내신 성령의 임재와 동행을 사모하자. 주님이
도우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