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에게 물어본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는 나는 요나 같은 사람일까 아니면 호세아 같은 사람일까?”나라고 하는 사람을 객관적으로 보기는 힘들겠지만 최대한 객관적으로 살펴보았다. 전자에 가깝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니 맘이 씁쓸하다. 진실을 보는 일은 언제나 두려운 일이라고 했던가? 아무도 뭐라는 사람은 없지만 왜지 부끄럽고 초라하게 느껴진다. 뭐랄까 하나님께 면목이 없다고 할까?

어려서 나는 너무 잘 웃고 얌전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밝고 정이 많은 아이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중학교에 입학한 이후론 사람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소릴 어머니로부터 많이 듣게 되었다. 어머님의 말씀이 어떻게 그렇게 사람이 차가워질 수가 있냐는 것이다. “차도 너무 차가워진 네 모습이 너무 낯설구나라고 말씀하셨다. 아버지의 개척 목회의 녹록하지 않은 현장은 사춘기의 가치관 혼란과 고민으로 힘들어하던 내 인생의 과도기와 겹치면서 나라고 하는 사람을 아주 차갑고 이성적이기만 한 사람으로 만들어 버렸고 그 시절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했던 것이다.


차가운 이성만으로 본 아버지의 목회 현장은 그냥 힘든 곳이었다. 그곳에서 만나 본 성도들은 모두 가식적인 사람들처럼 보였고 목회에 인생의 전부를 쏟아 부으시던 아버지는 목회에 미쳐 가정을 돌보지 않는 아버지로 보였고 하나님은 내게 아버지와 가정을 빼앗아간 분이었다. 그런 생각 속에 살던 학창시절의 나는 너무나 차가웠고 누군가를 사랑하기엔 너무 많이 부족했던 것이다. 사람도 가족도 하나님도 제대로 믿지 못하는 불신의 시기는 내 인생 최악의 시기일 수밖에 없었다. 믿음이 없는 곳엔 소망도 사랑도 없기 때문이다.


감사한 것은 그 차가움으로 인해 주님이 주신 길에서 벗어나려고 했던 나를 붙잡아주신 하나님 사랑의 뜨거움이다. 내가 어려서 보며 더 이상 보고 싶어하지 않았던 그 목회 현장의 이면까지 보게 해주신 일들이다. 때로는 길을 막으시고 때로는 길을 여시는 과정 속에서 내가 보지 못했던, 아니 보고 싶어하지 않던 것들을 보게 해주셨다. 그 과정은 짧지도 쉽지도 않았으나 나를 향한 하나님의 인내하심과 신실하심은 무엇으로도 값을 수 없다. 나는 목회를 시작한 이후가 되어서야 사춘기를 넘어서는 느낌이다. 사랑과 믿음의 언어를 다시 배우면서 인생의 가나다라를 다시 익히게 되었고 냉랭하던 가슴이 가끔 뜨거워질 땐 메말랐던 눈물샘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아마도 요나라는 선지자의 모습은 현실에 대한 차가운 이성과 자신의 경험과 기억만 절대시하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사역자의 얼굴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어쩌면 때때로 얼음장처럼 차가워지곤 하는 나의 모습일 것이다. 일만 남고 영혼에 대한 사랑과 기대를 잃은 일꾼의 모습 말이다. 목사가 사랑이 없이 목회를 하면 요나처럼 되는 것이다. 복음을 전하기는 하지만 영혼을 살리기 위한 애정을 잃어버린 일꾼 목사 말이다.


요나 같은 내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가슴 뜨거운 호세아를 기억해 본다. 그리고 사람의 능력이나 언변이 사람을 바꾸는 게 아니라 눈물 머금은 뜨거운 사랑이 사람을 바꾼다는 것을 되새겨본다. 30여년의 사역 동안 음탕한 여인 고멜을 아내로 맞아 부정한 여인에게 사랑으로 자신의 삶 전부를 내어준 위대한 선지자의 모습을. 이 시대에 필요한 사역자의 얼굴이 아닌가?


이젠 성도들과 교회를 위해 좀 더 호세아 선지자의 모습을 갖도록 더 노력해야겠다는 마음이 든다. 나는 분명 요나도 아니고 호세아도 아니다. 하지만 요나의 길과 호세아의 길 사이에서 방황하는 목사임에 틀림 없다. 결국 무엇을 하는가 보다는 그 일을 어떻게 하느냐가 사람의 차이다. 그저 목회를 하는 목사를 넘어 사랑으로 목회하는 목사로 자리매김 할 수 있기를 스스로에게 바라며 오늘도 주님의 보좌 앞에 엎드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