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의 땅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112016/칼럼
감사의 땅, 축복의 땅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곳은 황무지였으나 인간의 수고와 땀이 있었고, 그 위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했을 뿐이다. 열매가 있는 곳, 능력이 있는 곳이란 한 때
거친 광야나 잡초가 차지한 버려진 땅이었던 곳이었다. 그러므로 어디가 좋을까를 고민하는 우리의 진지함이나
세밀한 분석도 하나님 앞에선 그저 어리석음일 뿐이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는 40년이나 광야를 맴돌았던 이스라엘의 실수를 반복하는 무지한 백성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애초에 가나안 땅은 이집트의 삼각주 같은 비옥한 땅이 아니었다.
적어도 이집트와 비교할 때 더 좋은 곳이라고 말할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말하자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 할 때 하나님이 주신 말씀의 뜻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해한 뜻엔 큰 간극이 존재했던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저절로 잘 살 수 있는 땅에 지름길을 통해 들어가길 기대했겠지만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가나안을 향한 행로는 있는
그대로 광야길일뿐이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말씀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젖과 꿀이 흐르고 은혜의
강물이 흐르는 곳이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곳을 말한다. 그렇다면 인간이 하나님과 함께 한다는 것은 또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인간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예배하는 것, 순종하는 것, 찬양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예배하고 찬양하는
곳에 하나님의 영이 임하시고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은 곳 하늘의 복이 흐르는 곳이 되는 법이다.
하나님은 모세를 불러 말씀하시기를 애굽에 가서 바로왕에게 전하기를 하나님께서
사로잡힌 히브리 백성들을 불러내어 광야에서 그들의 예배를 받기 원하신다고 하라 하신 바 있다. 축복과 감사의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되는 비밀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신다는 사탕발림으로 미혹하여 끌어내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예배하는 백성이 되어 하나님과 동행하게 되면 그들이 어딜 가든지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게 하시고자 하신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정욕은 스스로 장님이 되게 하는 법. 물질과 안락한 생활에 눈이 어두운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이 아니라 광야 길에서부터 젖과 꿀이 흐르는 자리를 찾느라 눈이 벌겋게 달아올랐고
그들은 계속 넘어지기를 반복하며 광야를 맴돌게 되었던 것이다. 여호수아와 함께 정복하여 차지한 땅 가나안도
마찬가지였다. 사사시대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 안에서조차 정욕에 빠져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자신의 뜻대로
하자 그곳은 또 다른 종살이의 자리가 되었을 뿐이었다.
그렇다면 이 시대의 가나안은 어디인가? 하나님께 예배하는 곳이면 어느 곳이나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될 것이다. 하나님의 영이 임하는
곳, 성령에 충만하여 예배하는 곳 바로 그곳이 주님의 나라가 임하는 축복의 땅인 것이다. 그러므로 추수감사절을 맞이하는 우리의 감사의 근본 이유는 소출의 풍성함을 넘어 우리의 심고 거두는 삶의 현장에 함께 동행하셨던 임마누엘
하나님의 임재라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