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영혼은 어떤 상태인가?
010116/칼럼
사람은 자신이 어떤 질문을 가지고 살아가느냐에 따라 얻게 되는 열매가
다른 법이다. 기록에 따르면 감리교 신앙운도의 선구자였던 존 웨슬리 목사는 주중 소그룹 모임을 시작할 때마다
“당신의 영혼은 어떤 상태인가요(How is it with your soul)”라는 질문으로 시작했다. 신앙인의 인생에서 영혼의 문제 보다 더 본질적인 것은 없기에 웨슬리가
항상 던진 이 질문은 자기 자신과 성도들이 가야할 성화의 삶에서 중심을 잡아주고 방향을 잡아주는 키의 역할을 해주었다.
감리교회의 초기 속회 모임은 약 12명 정도로 구성되었는데 웨슬리는 그들 중에서 죄 사함과 구원의 확신을 가진 사람 6-8명을
택해서 신도반(band)을 조직하고 그 안에서 다시 모범이 될만한 선발 신도반까지 만들었다.
그리고 그 모임에선 주로 영혼의 참 모습에 대해 자유롭게 말하고 자신의 영적인 상태를 돌아보고 죄와 허물에 대해 나누기까지
하였다. 당시 웨슬리와 웨슬리를 따르던 감리교 운동에 참여한 성도들의 삶은 하루의 단 1초도 모자랄 만큼 개인 경건 생활, 소그룹 모임, 전도와
선교, 봉사와 섬김의 시간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럼에도 당시의 성도들이 불평 없이 개인적 사회적 성화를 위해 온몸을
불사를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항상 자신의 생각과 영혼이 온전한지 말씀과 기도 속에 되돌아보고 반성하며
성도된 자신의 현 모습과 가야 할 길을 직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 때만 뜨거웠던 그러나 지금은 얼음장처럼
차가운 심령이 되어버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가? 그들이 차가워진 이유는 결코 게으르거나 어리석기 때문이
아니다. 자신의 영혼의 상태를 직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세상 그 무엇보다 내 자신의 영혼의 건강은 중요한 것이다.
사회적, 종교적, 정치적 이슈들을 바라보면서
분노하고 진리를 외치는 사람들은 이 시대 어디를 가도 볼 수 있다. 한국의 주말 광화문 사거리에 가도 볼
수 있고 교회나 교단을 걱정하는 목회자와 성도들의 애정 어린 비판들 속에서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 영혼이 지금 어떤 상태인가를 아는 것이다. 자칫 잘못하면 내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끌을 보며 왈가왈부 하다가 넘어지게 된다. 다른 이들의 몸을 진단해서 병을 고치면서도
정작 자신이 암에 걸린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죽어가는 어리석은 의사와 같이 될 수도 있다.
요셉과 같은 인물이 위대한 이유는 결코 그가 역경을 딛고 이집트의 총리대신의
자리에 올랐기 때문이 아니다. 남들이 실패라 말하는 상황, 억울함과
고난과 핍박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그를 억눌러도 위기와 유혹 속에서도 끝내 자신의 영혼을 주님의 인도하심에 내어 맡기고 언제나 영적으로 강건하였다는
점이 바로 그가 위대한 이유인 것이다.
이제 새해 새날이 시작되었다. 가정의
경제적 안정과 편안한 삶의 상태만 살피며 한 해를 살 것인 것? 아니면 당신의 영혼의 상태를 말씀의 거울로
비추어가며 성도의 길을 갈 것인가? “나의 영혼은 어떤 상태인가?” 하루를 열고 닫을 때마다 이 질문으로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참으로 영혼이 강건한 어번교회 목회자와 성도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기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