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 좋으라고?

 

01222017/칼럼

 

사람의 일들엔 각각 그 목적과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목적은 대개 진리를 드러내거나 선을 행하는 일 또는 아름답게 하는 일과 같이 진선미를 이루는 일이 곧 그 대의명분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사람은 그 대의명분 뒤에 숨어 있는 저의나 본질을 보지 못한다. 그런 상태에서 애만 쓰다가 서로 갈등하거나 맘을 상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가족들이 가족회의를 하면서 싸우는 일도 그렇고, 나라의 정치를 하는 정치인들이 자신의 정치철학에 따라 일하다가 당파싸움에 휘말려 나라와 국민만 낭패보게 하는 일들이 그런 경우에 속한다.


작년 말 박근혜 대통령은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에 관해 말하면서 최순실씨의 도움을 받은 것은 다 나라와 국민을 위해 더 잘하려고 한 일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이에 관한 수사가 진행되자 국민 좋으라고 대통령이 했다는 그 모든 일들이 실은 자기 자신이나 특정인에게만 좋은 일이었다는 것이 드러났다. 삼성 그룹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기각도 나라의 경제를 위한 선택인 것처럼 말하지만 이로 인해 이득을 보는 사람은 소수의 기득권 세력일 뿐이다.


명분도 중요한 것임에 틀림 없다. 하지만 정말 누구에게 좋은 일인지는 제대로 분별해야 한다.  이익을 보는 사람이나 단체가 누구인지 냉정하게 바라 볼 필요가 있다. 가정의 일이나 교회의 일에서도 마찬가지다. 가정을 위해, 회사를 위해, 교회를 위해 한다는 우리의 일들이 정말로 가정과 회사와 교회에 좋은 일일까? 하나님이 기뻐하실까? 대의명부난 붙들고 사리를 분별하지 못할 땐 본질적인 질문으로 돌아가 볼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만일 공동체의 정의를 세우기 위한 투쟁이라 생각한 우리의 일이 오히려 공동체를 깨뜨리도록 일이라면 우리는 어찌 해야할까? 하나님 나라를 위한 일이라 생각했던 우리의 일이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막도록 조장하는 사탄의 일이 되어버릴 가능성이 있다면 어찌 해야 할까? 우리는 지금 누구 좋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일까?


하나님 나라의 원초적인 모습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세상임을 기억하자. 사람의 눈에 보암직하고 안정적인 듯한 세상은 타락한 세상이다. 우리의 판단에 좋은 일들은 결국 누군가를 넘어뜨리겠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일은 우리에게 아픔인듯해도 결국은 열매를 맺게 하는 일인 것이다. 새해엔 지금 나 자신이 행하는 일들에 대해 다시 한 번 물으며 가자. “누구 좋으라고 하는 일인가?”